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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학재단 이정우 이사장은 유럽학생들처럼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국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미래 인재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투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1977년 경북대 교수로 들어와 2015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정우(70)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경북대 정년 퇴임 후 3년간의 짧은 휴지기를 거쳐 2018년 한국장학재단 일을 맡게 됐다. 40년 가까이 학생들과 함께했고 반백 년 동안 '불평등'을 화두 삼아 연구해온 그가 어려운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은 인연치고는 꽤 좋은 인연이다. 서울과 미국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대구에서 활동했던 이 이사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기도 하다. "대구가 살기 좋은데 왜 서울로 가려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쯤 되면 그 가치를 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대구시민으로서의 자긍심도 느껴진다. 줄기차게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그는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아쉬움도 내비쳤다.
이젠 어떤 명장이 와도 부동산 전쟁서 이기기 힘들어
가장 중요한 보유세 강화 시기 놓쳐 정책내성만 키워
공급 늘리려 수도권 그린벨트 푸는 건 역사에 죄 짓는 일
국가장학금 연간 4조원 운용…전국대학생 절반이 혜택
대상 확대해 어려운 중·고등학생에게도 생활비 지급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도록 국가 차원 인재 투자 필요
▶평생 불평등을 연구해 왔다.
"한국은 불평등이 심각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 방향을 불평등, 양극화를 줄이는 것에 맞춰야 한다. 문 정부 초기에 양극화를 극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으로 국정방향을 잘 잡았으나 야당, 보수 등의 공격으로 소득주도성장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정부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뉴딜정책을 들고 나왔다.
"미국에서 1930년대에 추진했던 뉴딜정책은 근본적으로 억강부약 정책이다. 강자는 억제하고 약자는 돕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형 뉴딜은 억강부약보다는 미래성장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성장산업은 역대 정부가 강조해오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른 정부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좋은 방향이 있는데 방향을 잃고 배회하는 양상이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크다.
"부동산은 경제의 핵심이다. 20여 차례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지만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집 없는 서민은 박탈감에, 다주택자는 세금 때문에 불만을 터뜨린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면 제일 먼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 문 정부 초기에 금융, 행정규제로 부동산을 잡으려 해서 결국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종부세 처방이 나왔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현재 추진 중인 보유세 인상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국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못 잡는다는 의견도 많은데.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금 말고 무엇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는지 답을 듣고 싶다. 대안 없는 비판이다."
▶부동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공급 확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공급 확대는 건설업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안 된다. 그린벨트를 푸는 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가수요를 잡아야 한다.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유세를 강화하면 된다. 공급 확대는 국민을 오도하는 궤변이다. 바른말 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묻혀서 들리질 않는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우려도 크다.
"참여정부 때 공급 확대방안으로 판교 등을 개발했지만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했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현상은 찾기 힘들다. 지방을 살려야 한다. 이것이 수도권 집중을 막는 방법이다."
▶지방을 살릴 방안은.
"지방을 살기 좋게 만들면 된다. 지방에 공장, 회사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물론 대학도 지방에 이전해야 한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은 말만 나오고는 진척이 없다. 이런 큰일은 대통령 임기 초반에 해야 하는데 후반에 들어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신상필벌을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그렇다. 처음 번지수가 틀린 정책을 들고 나오니 내성만 키워 지금은 보유세를 아무리 강화해도 안 먹힌다. 대통령 임기 후반이라는 점도 효과를 반감하는 요인이다. 이제는 어떤 명장이 와도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다. 정부 전반에 걸쳐 신상필벌이 부족하다. 기강을 세울 땐 세워야 한다."
▶한국장학재단이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삼경(三驚)재단'이라 말하고 싶다. 장학재단을 소개하면 1분 안에 3번 놀란다. 첫째 직원이 500명 가까이 된다. 둘째 1년 예산이 8조원에 이른다. 셋째 본사가 대구에 있다. 8조원이면 대구예산과 맞먹는다. 엄청난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 우리 지역에 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2015년 대구에 왔다."
▶장학재단의 중점사업은.
"대학생에게 국가장학금을 지급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연간 4조원 가까운 규모이며 수혜자가 100만명이 넘는다. 전국대학생이 200만명이니 절반 정도의 학생이 혜택을 본다. 학자금 대출사업도 1조7천억원에 이른다. 수혜자는 50만~60만명이다. 멘토링프로그램도 의미 있는 사업이다. 사회지도자가 후배에게 인생상담, 조언 등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300명의 멘토가 월 1회 상담을 해준다. 연간 2천500명의 학생이 참여한다. 10년 동안 해 왔는데 반응이 좋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줄 국가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교수로 있을 때 매 학기 장학금 심사를 해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공부할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장시간 일한다. 이렇다 보니 학점이 안 나오고 취업도 힘들어진다. 국가가 미래를 짊어질 인재에게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 학생들처럼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는 국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사장직을 맡은 이후 장학금 지급 대상을 확대했다.
"장학재단은 대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게 돼 있다. 중고등학생은 등록금이 없거나 소액이라서 장학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는 등록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생활비도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고등학생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기재부의 도움으로 복권기금에서 3천50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이것을 원금으로 이자를 운용해 연간 1천500명의 중고등학생에게 생활비를 지급한다. 중학생은 25만원, 고등학생은 35만원이다. 앞으로 수혜학생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최근 학교밖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합창단도 만들었는데.
"학교밖청소년들이 엄청나게 많다. 36만~4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학교에 적응을 못하거나 어른의 잘못으로 방치돼 있는 아이들이다.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학교밖청소년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 방안의 하나로 합창단을 조직했다. 영화 '오빠생각'에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합창단 만드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지난 7월 발대식을 하고 주1회 재단 강당에서 연습 중이다. 지휘는 강우영 성악가(전 로마 교황청 소속 '루도비코 비토리아 음악학교' 교수)가 맡는다. 다행히 강 지휘자가 고향을 위해 재능기부를 했다. 현재 15명인 단원을 늘려나가고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열 꿈에 부풀어 있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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