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캐스터, 소피스트 그리고 '테스형'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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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6   |  발행일 2020-10-16 제19면   |  수정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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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변호사

얼마 전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얘기로 시끄러웠다. 진중권, 유시민 등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소피스트 논쟁 때문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본인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계몽군주' 발언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 하자, 진중권 전 교수가 유시민 이사장을 소피스트라고 비판한 것이다. 여기에 가황 나훈아씨의 '테스형'이라는 노래까지 나왔으니, 사람들은 고대 철학자를 검색하느라 바빴다.

한 강연에서 내가 진 전 교수에게 '날카로운 평론이 가능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물었다가 '철학'이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이후 유시민 이사장이랑 철학자 논쟁한 걸 보면 빈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진 전 교수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이유는 가끔 평론이란 걸 해서다. 종편이 생긴 이후로 변호사들의 출연이 잦아지면서 생긴 기회다. 방송사는 다양한 얘기가 가능한 평론가나 정치적 감각이 있는 변호사를 선호한다. 쏟아지는 뉴스에 맞춰 출연자를 섭외하기가 어려워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처지에 이런 요구를 맞춰주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택한 방법은 '초치기'였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 3개를 통째로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이런 걸 '짬밥'이라고 하나.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새벽에 몸을 혹사해가며 준비하지는 않는다. 다만 계속 갈증이 느껴지는 부분은 근본적으로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방송 패널의 유형은 크게 철학자와 캐스터로 구분된다. 캐스터형이 되기 위해서는 독해력과 암기력이 좋아야 한다. 기사를 많이 읽고 그중에 핵심을 찾아 조리 있게 말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은 '진짜' 평론보다는 사건사고 해설에 더 적합하다. 제한된 시간 동안 뉴스와 함께 짤막한 논평을 전달하는 토크 프로에는 안성맞춤이다.

철학자 유형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형으로 나뉜다. 소피스트형은 방송의 주목적이 자기 편들기다. 본인이 어떤 말을 할지는 자기편 동향을 보고 정한다. 자주 나와 시청자를 설득하는데 열을 올릴 뿐 진실이 뭔지는 모른다. 가끔 한 사람이 써서 공유한 것 같이 똑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사실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판단부터 하다 보니 나오는 말은 궤변에 가깝다. 이들에게 방송은 자기편을 의식한 쇼일 뿐이다.

두 번째는 소크라테스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드물다. 일단 이런 패널들은 진실 자체에 집중한다. 오랜 기간 쌓인 내공이 있기 때문에 한마디 던지는 멘트는 깊이가 있다. 얼마 전 조국 사태 때 한 패널이 자진 하차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이 알던 조국이란 사람의 인생과 지금 터져 나오는 사건들 사이에 괴리감을 보며 어느 한 편에서 말하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그 패널의 평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소피스트가 아닌 건 분명하다. 무작정 편드는 쇼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언제까지 본업 외에 평론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향점은 '테스형'이다. 다만 지금 같은 진영논리가 팽배한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누군가에게는 소피스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향점을 '테스형'에 두었다면, 그냥 세상을 보는 눈이 부족해서 느끼는 이 갈증을 해소하는 데만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각자 원하는 결론에 맞춰 평가를 하는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소피스트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굳이 한 사람 더 가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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