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당못 부용정 공연을 보고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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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6 10:31  |  수정 2020-10-26 11:35  |  발행일 2020-10-27 제15면
김봉규

30년 전쯤의 일로 생각된다. 초여름 어느 날, 문경새재 초입 길을 걷고 있었다. 홀연히 저 앞 오른쪽 숲에서 멋진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가야금 소리인지 거문고 소리인지도 구별 못할 때였다. 너무나 좋아서 홀린 듯이 그 소리에 빠져들며, 숲 속 어느 정자에서 누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20~30분 동안 황홀감 속에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숲길을 걸어갔다. 그 곳을 확인하니 정자가 아니었다. 상점에서 틀어놓은 김죽파 가야금산조 음반이 진원지였다. 그 후 멋진 정자에서 거문고나 가야금 등의 연주를 즐기거나 직접 연주하는 것을 꿈꿔왔다.


지난 22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앞 성당못 부용정에서 대구문화예술회관(관장 김형국)이 마련한 '귀정(歸正)'이라는 국악공연을 보았다.


1984년에 완공된 성당못 부용정(芙蓉亭)은 열십자 형태의 정자로, 서울 창덕궁 비원에 있는 정자인 부용정(보물 제1763호)과 이름이 같고 모양도 비슷하다. 시멘트 건물이지만, 안의 마루는 나무로 되어있다. 다리를 통해 건너가게 돼 있는 이 부용정은 주변의 못과 나무, 야산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화려한 조명이 더해진 야경도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그동안 출입이 통제돼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이 부용정이 멋진 국악공연 무대가 된 것이다. 열십자 마루 중 남쪽 마루만 높은데, 그 마루 위에 연주자들이 올랐다. 그 앞에 15명 정도의 관객이 앉았다. 


석양빛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오후 6시, 부용정 안 무대에서 대구시립국악단 단원 김은주(가야금)와 배병민(대금)의 양금·단소 상영산 병주로 시작됐다. 이어 정악(청성곡) 대금독주, 대금·가야금 정악 합주, 김병호류 가야금산조,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 가야금·대금 산조 합주가 펼쳐졌다. 보기 드문 공연을 즐긴 관객들 모두 각별한 감흥에 젖어 들었다. 23일 저녁에도 거문고, 해금, 판소리, 피리 등의 연주가 펼쳐졌다.


부용정은 대구문화예술회관 시설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활용할 수도 없지만, 김 관장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이번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향후에도 부용정을 활용할 계획이고, 국악뿐만 아니라 첼로 등 서양 악기 연주 무대로도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오래 방치돼 있어 건물이 전체가 정갈하지 못한 상태여서 청소는 물론, 창문과 조명 등 보수도 필요해 보였다. 이 정자는 당초부터 국악 무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날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김은주(대구시립국악단 가야금 수석)씨는 "이 멋진 정자에서 연주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안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후 생각을 접고 있었는데, 오늘 부용정에서 연주를 한 것 자체만으로도 감개무량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성당못을 정비하고 부용정도 짓게 한 당시 이상희 대구시장은 정자를 잘 활용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혀 명소로 만들어가길 주문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부용정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고 제 빛을 발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부용정 공연이 꼭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겠지만, 그런 점은 얼마든지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도심의 이 정자는 색다르고 매력적인 공연의 산실로 발전시킬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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