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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물길공원. 안동댐 아래에 숨은 듯 자리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예전에는 '폭포공원'이라 했고 지금도 사람들은 '비밀의 숲'이라 부른다. |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인 회색빛 댐이 거대하고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그에게로 가는 강변길에는 우듬지로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들이 커다란 몸을 가볍게 펼쳐놓고 있었다. 잠시 후 노랑의 물결 위로 전나무와 메타세쿼이아의 푸른 삼각형이 새처럼 높이 솟구쳤고, 그들이 떨어뜨려 놓은 담청색 그늘 속에서 무엇인가가 반짝거렸다. 연못이다. 부서지며 빛을 내는 분수다. 윤기 나는 초록의 수련과 주름진 절벽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폭포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걷거나 가만히 서 있거나 나무둥치처럼 앉아 있었다. 가을은 아직 다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는 것이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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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의 노란 빛깔은 길 따라 완연하고 낙동강물길공원은 수목들 속에 비밀스레 숨어 있다. |
◆비밀의 숲, 낙동강물길공원
연한 연둣빛의 너른 잔디밭에 샛노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선명한 초록색 차양 우산 아래에는 나지막한 돌 벤치에 기대어 앉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으로 연못이 펼쳐져 있고 희끗한 벼랑의 검은 골을 타고 폭포가 조용히 떨어져 내린다.
벼랑 위의 숲이 무성하다. 얼룩덜룩한 숲의 선율을 만드는 저 나무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산사나무라든가 물푸레나무 혹은 느릅나무처럼 음악 같은 이름이면 좋겠다. 풀어헤친 흰 머리칼처럼 보이는 저 물가의 나무는 버드나무겠다. 풍만하지만 어딘가 쇠약해 보이는 버드나무는 연못에 희미한 그림자를 떨군 채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를 부드럽게 내고 있다. 분수는 꽃잎처럼 떨어진다. 날개를 펼친 백조 같기도 하다. 분수의 낙하를 구경하러 수련들이 동그랗게 몰려들었고 수련의 무수한 동그라미들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어른거렸다.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 왼편
퇴계선생 기리며 조성한 정원
자연낙차 이용한 폭포와 연못
알록달록한 숲의 선율 느껴져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 왼쪽에 위치한 이곳은 '낙동강물길공원'이다. 예전에는 '폭포공원'이라 했고 사람들은 '비밀의 숲'이라 부른다. 퇴계 선생을 생각하며 꾸민 정원이라 한다. 공원의 폭포는 댐의 배수구를 통과한 물을 자연 낙차로 떨어뜨리는 인공폭포다. 분수 또한 댐에 저장되어 있는 물이다. 수위 차이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낙차를 이용한 무동력 분수라고 한다.
폭포를 담은 연못은 무지개다리에서 슬쩍 꺾이어 좁은 듯한 습지로 이어지다가 얕은 징검다리 저편으로 다시 널찍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하나의 수공간이지만 여러 개의 얼굴을 가졌다. 공원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연못의 강세와 활엽수들의 찬란, 그리고 늘 푸른 나무들의 신성으로 충만하다.
연못가에는 전나무와 메타세쿼이아가 형제처럼 늘어서 있다. 그들은 숲을 만들고 길을 만든다. 숲에는 평상이 누워있고 길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단조롭게 재잘거리는 물소리, 나무의 향기를 담은 상쾌한 공기, 그리고 산뜻한 고요가 이 아름다운 장소를 뒤덮고 있다. 조그맣게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음성마저 사랑스럽다. 아직 정오의 햇살은 외투를 벗게 하는 온기를 가졌지만 이따금 스치는 바람은 쌀쌀맞다. 하지만 물색의 하늘에는 베일처럼 엷은 흰 구름이 영원처럼 높아 시월의 이 아름다운 날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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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루에 오르는 산길 모롱이의 숲속 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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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루로 향하는 단풍나무 길. |
◆안동루에 오르며
댐 아래 잔디광장이 시원하다. 다목적 구장과 풋살 경기장이 할 일 없이 느긋하고, 가장자리로 난 산책로에는 어린 나무들이 소망을 가진 아이처럼 어엿하다. 광장의 한쪽에는 안동댐의 수력발전소 수차가 놓여 있다. 안동댐 준공 이후 2017년까지 42년간 실제로 수력발전소에서 사용된 수차라는 설명이 있다. 수차는 2018년에 교체되었고 제 할 일을 다한 옛 수차는 이곳에 조형물로 서 있다. 수력발전소의 심장이라 할 만한 것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꽤 흥분되는 일이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기계는 언제나 약간 자랑스럽다.
42년 소임 마친 '발전소 심장'
잔디광장에 오롯이 서 있어
숨 헐떡이며 안동루 오르면
깊고 긴 물길에 탄성이 절로
수차 뒤로 보이는 무서운 빨강으로 향한다. 고개를 치켜들면 단풍의 얼룩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슬쩍 보인다. 안동루다. 누각으로 오르는 길이 저 빨강 속에 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 '단풍나무 길'에 든다. 곧장 치고 오를 것만 같았던 길은 숲을 요리조리 거닐며 나아간다. 직사광선에 타버린 듯했던 빨강은 숲속에서 차분하고 부드럽게 빛난다. 연두와 담홍과 노랑의 산란이다. 길에는 검붉은 단풍잎들이 낭자하다. 그 길을 한 사람이 나뭇가지를 짓밟는 소리를 내면서 앞서 오르고 있다. 그리고 곧 아, 하는 탄성이 사방을 울린다. 짐짓 천천히 다가간 그곳에는 산모롱이가 강을 향해 열려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과 멋진 의자들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앉아 있다.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강물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제 안동루까지는 지그재그로 오르는 아찔하게 가파른 계단이다. 계단 기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포도주 빛깔로 휘우듬하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마른 풀들이 버석대는 소리가 끝없다. 또각또각 누각에 오른다. 벌들이 많다. 전투력은 없어 보이지만 움찔한다. 누마루에 선다. 눈 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 평화롭고 웅대하고 그림과 같이 세밀하게 정돈되어 있는 풍경 앞에서 깜짝 놀라 우뚝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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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루에서는 낙동강의 깊고 긴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정상에서
안동루 바로 옆으로 안동댐 정상 길이 연결된다. 넓고 곧은 길이다. 길 끝에 세계물포럼 센터가 보인다. 이 댐을 쌓는데 장장 5년이 걸렸다. 그리고 1976년 10월 높이 83m, 길이 612m의 안동댐이 완공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겸용 댐이라 한다. 안동댐은 홍수 방지, 농업, 식수, 관광 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정상의 한가운데에서 호수를 본다. 물에 잠긴 수많은 집과 논밭은 흔적도 없다. 또 강을 본다. 강물은 영락교와 월영교를 지나 멀리 산과 산 사이로 희부옇게 사라진다. 강변 은행나무의 노랑은 길 따라 완연하고 선명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낙동강물길공원은 수목들에 감싸여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
댐 정상은 더 깊은 정적을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물결도 바람도 새소리도 없었다. 적의도 관심도 없는 정적이었다. 오직 자기 혼자가 되어 뛰고 있는 심장의 정적이었다. 단순하고도 경건한 감동이 이곳으로 오느라 헐떡이던 심장을 꿈처럼 어루만져 주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로 나가 시청방향으로 간다. 안동대교, 영호대교, 영가대교 어느 다리를 건너든 우회전해서 계속 직진한다. 월영교, 안동댐 방향이다. 월영교 앞을 지나 한국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를 지나면 곧 길이 갈라지는데 아래 강변 쪽으로 가면 된다. 댐 아래 길 끝에 주차장이 있고 그 왼쪽에 낙동강물길공원이 자리한다. 안동댐 정상길은 동절기(11~2월)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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