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설 도용 논란과 '글의 무게'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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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19 11:29  |  수정 2021-01-20 07:58  |  발행일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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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커서 글을 쓰고 싶다 했더니 어머니가 엉엉 우셨어요. 말리지는 않고 그냥 우셨어요. '내 자식 이제 굶어 죽겠구나'라면서요."

10년 전쯤 기자와 만난 한 원로 소설가가 한 말이다.
글 쓰는 직업은 수십 년 전 그때에도 '춥고 배고픈' 일로 인식됐나 보다. 소설가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들이 기술을 배워 지금보다 덜 가난하게 살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앞날이 서글픈 다른 꿈을 품고 있다. 그저 울 수밖에.

기자생활을 하며 국내외 많은 인물을 인터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중 하나다.

다행히도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소설가가 됐지만, 그건 결과론적 이야기일 뿐. 앞날에 가난과 고난뿐이었어도 그는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친 듯이 영감이 솟구쳐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 그들의 창작물은 많은 이들의 감성을 살찌우게 하고, 힘들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나쁜 세상을 날카롭게 고발해왔다.

기자는 언제나 글에도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글쓴이의 영혼이 실리는 것이니까. 그래서 어떤 책은 깃털처럼 가볍게, 또 어떤 책은 태산처럼 무겁게 느낀다. 그 무게만큼 그 작가를 존경하고, 나는 그의 책을 구입한다. 그런데 '글의 무게'가 온당한 대우와 존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큰 파장이 일었던 '소설 도용 논란' 말이다. 누군가 타인의 소설(뿌리)을 베껴 공모전에 출품하고, 5곳에서 수상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원작자가 피해를 호소하며 SNS를 통해 상세히 상황을 밝혔다.

작품을 도용한 A씨의 입장이나 해명은 뭘까. 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그랬나. 독자들도 궁금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A씨와 통화가 돼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봤다.
A씨는 죄송하고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다. 추후 번복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일단 제외하고, 러프하게 기사를 썼다.

그동안 접한 많은 작가들은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특히 책이든 신문이든 종이에 쓰는 글은 한번 인쇄되면 고칠 수 없어 더욱 예민했다. 글은 곧 자신의 분신이기에, 한 줄 한 줄에 그토록 몰두한 것이다.

점 하나에도 바르르 떠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동안 누군가의 '글의 무게' 즉, '영혼의 무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존중을 표해왔을까. 창작자에 대한 예우와 표절·도용 문제, 공모전 시스템 개선 등 여러모로 많은 숙제와 생각할 거리를 남긴 논란이다.
노진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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