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기우(杞憂)와 하인리히 법칙

  •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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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2   |  발행일 2021-01-22 제23면   |  수정 2021-01-22

중국 춘추시대 기(杞) 나라의 한 백성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쩌나'를 항상 걱정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기인지우(杞人之憂)다. 줄여서 기우(杞憂)라고 부른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거나, 그 걱정을 뜻한다. 최근 포항에서 땅 꺼짐 현상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이 기 나라 백성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포항의) 땅속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고 걱정한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 5.4 규모의 역대급 지진으로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걱정이 과연 '기우일까'하는 합리적 의심도 든다.

상당수 포항시민은 포항지진 이후 지반침하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포항 전역은 지반이 무른 퇴적암으로 구성돼 있다. 연약한 지반 때문에 공사를 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약 3년 동안 도로, 오피스텔 신축 현장, 포항철강공단 공장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원래 약한 지반에다, 지진까지 겹쳐 지반이 크게 비틀린 것이 지반 침하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포항의 잦은 지반 침하 현상을 두고 '하인리히(Heinrich)' 법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는 저서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서 1건의 대형 사고 전에는 그와 관련된 29번의 크고 작은 사고와 300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고 했다. 이른바 '1:29:300'으로 불리는 법칙이다. 즉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땅은 그냥 꺼지지 않고, 꺼질만한 원인이 있어야만 꺼진다고 한다. 연약지반→지진→비틀림이 서로 얽히고설켜 잦은 지반 침하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민들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항시를 넘어선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한 때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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