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우리는 올바른 언론을 가질 권리가 있다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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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4   |  발행일 2021-04-14 제27면   |  수정 2021-04-1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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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1980년 8월19일 오전 부대지프를 타고 모 사단에 들어가 삼청교육대를 취재했다. 현행범도 있었지만 왜 붙잡혀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신문·방송 기자들은 보도자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연병장을 돌면서 "반성!"을 외치는 훈련장으로 옮겨갔다. 차출된 사람 중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있었다. 군은 이들에게 4주간 순화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기자 2년 차인 나는 경쟁지를 의식하며 고민 끝에 첫 문장을 '그들은 손과 손을 부딪쳐 자신의 허물을 털고 있었다'로 시작했다. 다음 날 문신을 한 사람들이 멸공봉을 들어 올리는 사진과 함께 '인간 개조의 열기 가득'이란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그 후 시대가 바뀌고 삼청교육대의 실상과 그 피해가 증언으로 드러나면서 당시 취재기자로서 무엇을 하였나를 되짚어 보며 부끄러워했다.

지난 4월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신문편집인협회가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해 창간정신을 기리고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자유와 품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제정'했다. 신문은, 언론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미국 언론에서 언론자유 남용의 역사는 길다. 막강한 펜(언론)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자유언론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제퍼슨은 언론을 극찬하며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노라'라는 유명한 문장을 언론사(言論史)에 남겼다. 그러나 미국 자유언론은 괴물이 돼 갔다. 선정주의 황색저널리즘에 매몰돼 갔다. 추문폭로자(muckraker)로 변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20세기 들어서도 여전했다.

'인간쓰레기들'이라는 오랜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1943년 시카고대 총장인 허친스가 언론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일명 허친스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4년의 연구 끝에 1947년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언론의 자유는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 자유'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저널리즘의 기준이 됐고, '사회책임이론'의 모태가 됐다.

독재정권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이 갈구하는 꿈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못 믿겠지만, 1979년에는 경북대·영남대·계명대 학생들이 대구도심 반월당~대백~한일극장 일대에서 연일 '독재타도' '유신철폐' 시위를 벌여도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았다. 어떤 못된(?) 학생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신문에 실을 수 있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학생시위 한 줄 못 싣는 판에 '대통령'의 '대'자도 언급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느 언론사 기자들도 대통령을 마음대로 소환한다. 언론자유를 만끽한다. 언론은 언론자유를 획득한 민주화운동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유감스러운 점이다. 언론은 일제에서 해방된 시점 등 사죄하고 반성할 기회가 많았는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군부독재타도에 기여한 바 없더라도 언론은 시민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

그런데 언론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다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의견기사인 신문칼럼을 중심으로 보면 언론은 너무 정파적이다. 특히 보수언론이 그러하다. 이중잣대다. 헐뜯기다. '내로남불'이란 요상한 조어를 상용한다. 배려가 없다. 폴리티션의 프로파간다를 무비판으로 복제한다. 선도 언론의 프레임을 지방언론이 추종한다. 그래서 글이 너무 경박하다.

허친스위원회처럼 누가 거금을 조건 없이 제공하여 민간위원회가 발족됐으면 좋겠다. 언론에 취재보도를 암묵적으로 위임한 우리는 올바른 언론을 가질 권리가 있다.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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