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관람객 참여형 예술?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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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2   |  발행일 2021-05-12 제27면   |  수정 2021-05-12 07:25

최근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의 특별기획전이 열리는 전시관에서 어린이 관람객 2명이 작품을 훼손했다. 아이들이 전시작 위에 눕거나 무릎으로 문지르고 다니는 과정에서 서화작품의 글씨 일부가 번지고 뭉개졌다. 아이들의 행동을 본 아버지는 제지는커녕 오히려 사진을 찍어줬다. 이에 미술관측이 항의하자 아버지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쇼핑몰에 설치된 미국 낙서화가 존원의 미술 작품에 젊은 커플이 낙서했다. 낙서화는 말 그대로 벽 등에 낙서한 듯 그린 그림이다. 존원의 벽화에 붓으로 물감을 칠한 이들은 "앞에 붓이 놓여 있어 해도 되는 줄 알았다"라고 해명했다.

박 화백의 작품은 1억원, 존원의 작품은 5억원에 이른다. 다행히 두 작가는 작품 훼손에 대해 '통 큰 용서'를 했다. 고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화백은 "이 또한 작품이 세월을 타고 흘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일 것"이라며 그대로 두기로 했지만 존원 측은 복구를 원했다.

최근 미술계가 관람객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난해하다는 현대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작품 접근을 막는 차단선을 치우고 손으로 만져도 되는 작품까지 선보인다. 쿠바 출신의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처럼 관람객 참여형 미술작품도 있다. 토레스는 전시 공간에 사탕을 쌓아놓고 관람객이 가져가도록 했다. 전시를 보다가 주워 먹어도, 주머니에 넣고 가져와도 된다.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이 지점에서 관람객과 작가, 참여와 비참여의 차이가 모호해진다.

분명히 작품 훼손은 잘못된 일이고 관람객의 부주의 또한 지적할 만하다. 그런데도 관람객이 이것을 훼손 행위인 줄 모르는 지점에까지 이른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다시 확인하는 사건이라 눈길을 끈다. 작품 훼손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 밝힌 거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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