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모두의 영화…"장애인 영화 관람 환경 개선해야"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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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4   |  발행일 2022-01-14 제39면   |  수정 2022-01-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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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지역 인권영화제 행사에서 패널과 관객들이 인권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영화는 가장 많은 대중적인 문화예술 장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한국의 영화 관람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9년 2억2천668만명(2019년 한국영화산업결산, 영화진흥위원회)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며 시장 규모 역시 처음으로 6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이토록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영화의 작품의 질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영화관이라는 환경 때문이다. 물론 팬데믹 시대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곳이 영화관이라고 하지만 팬데믹 이전에는 전체 영화산업에 극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76%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극장이 내 주변에 늘 있었고 관객은 그 극장에서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안락한 환경 속에서 영화라는 '예술'을 즐길 수 있었다.

이토록 접근성이 높은 영화지만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큰 장벽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예술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와 향유에 관한 이슈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장애인영화제'(현 가치봄영화제)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활성화해 장애인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00년대 초반에는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2004년에는 한국영화에 한글자막을 삽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한국농아인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시·청각 장애인의 영화관람권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한국영화 한글자막·화면 해설 상영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영화인 배리어프리영화(기존 영화에 화면을 해설하는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의 제작이 점차 증가했다. 배리어프리영화만을 소개하기 위한 배리어프리영화제들도 생겨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청각 장애인 영화관람지원서비스인 '가치봄' 브랜드를 선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가치봄 사업을 통해 기존에 진행돼 오던 한글자막·화면해설 상영사업 외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같이 관람하되 배리어프리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폐쇄형 시스템' 장비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폐쇄형 시스템은 배리어프리영화의 경우 음성해설과 한글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동시에 관람하는 비장애인에게는 불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어 이를 개선하고자 시·청각 장애인이 안경과 이어폰을 사용하는 형식을 일컫는다. 지금까지는 기술적 조건상 개방형으로만 상영해왔기 때문에 영화관에서는 배리어프리영화에 별도의 상영시간을 배정해야만 하는 구조였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도입되면 언제든 원하는 상영시간에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의무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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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비장애인에겐 접근성 높지만
장애인은 여전히 쉽게 가기 어려워
2019년에 개봉한 199편 영화 중
한글자막 제공은 30편에 불과
이마저도 상영 횟수 턱없이 부족


이처럼 다양한 노력이 장애인의 영화관람 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비장애인의 영화관람권만큼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이 차별 없이 보장받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딘 현실의 변화는 장애인의 법·제도 개선 투쟁으로 이어졌다. 청각장애인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한글자막 의무화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199편 중 한글자막이 제공된 영화는 30편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상영 횟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상영시간마저도 주로 평일 낮 시간으로 배정돼 배리어프리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시·청각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영화 관람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며 2017년부터 법정다툼을 시작했다. 2021년 11월 이에 대한 2심 판결이 있었는데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유형 중 직접차별은 적용하지 않고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에 해당한다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아쉬운 판결이었지만 차별이 법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었다. 이와 더불어 같은 해 12월 개정된 영비법에는 영화업자와 비디오물영업자는 장애인의 영화 또는 비디오물 향유권 향상을 위해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영화 또는 비디오물에 접근해 이용할 수 있도록 폐쇄 자막, 한국수어 통역,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하는 안이 신설됐다. 이 역시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으로 그 아쉬움이 있지만 다양한 법적·제도적 기반 역시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보다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 가고 있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대구서도 환경 개선 위해 노력
배리어프리 섹션 별도로 두고 소개
매년 지역 단편영화제에선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지원상 등 수여
차별 없이 영화 즐길 수 있도록 노력


대구에서도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배리어프리 섹션을 별도로 둬 다양한 배리어프리영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대구단편영화제는 매년 지역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지원상을 수여하고 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2019년부터 지역 단편영화를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제작하는 '배리어프리영화 제작과정'을 개설해 일반 시민이 이 과정을 통해 배리어프리영화를 직접 제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3년간 10편의 지역 단편영화가 배리어프리영화로 재탄생했고 작년 말에는 이 작품들을 모아 소규모이지만 배리어프리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영화 관람에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여전히 한계가 많고 가야 할 길이 멀다. 지역 영화단체들의 작은 움직임부터 법과 제도의 개선을 위한 또 다른 노력들 역시 의식적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영화 역시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차별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날까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더 노력해야 한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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