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김건희' 서울발 코미디 주역으로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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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8   |  발행일 2022-01-28 제22면   |  수정 2022-01-28 07:15
윤석열 손바닥 '王'자에 이어
尹부인 '김건희 녹취록' 내용
지난주 외신판 비웃음거리
문화상품으로 쌓은 K-상표
정치란 놈이 한방에 날린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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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후보 부인, 성폭행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다"(아에프페), "한국 대통령 후보 부인, 미투 불만은 남자가 여자한테 돈을 안 줄 때 터진다고"(인디펜던트), "남자가 지불하지 않을 때 미투 발생 : 한국 대통령 후보 윤석열 부인, 유튜브에 분노 촉발"(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성폭행 발언 (한국) 대통령 선거판 뒤흔들다"(더 스탠더드)….

지난주 외신판에 뜬 속 시끄러운 제목들이다. '채널 뉴스 아시아' '더 스타' '스트레이츠 타임스' '말레이시아 인사이트' '르 피가로'를 비롯해 숱한 국제 언론이 달려들었다. '김건희 녹취록'을 겨냥한 그 내용들이야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비웃거나 낮잡아보거나!

지난해 10월 초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 손바닥에 새긴 '왕(王)'자로 외신판의 비웃음거리가 된 데 이은 서울발 정치 코미디 제2탄이다. 30년 넘게 아시아 정치판을 취재하면서 대통령이나 총리 선거판에 후보의 부인 문제로 우리처럼 난리 친 꼴은 본 적 없다. K-드라마, K-무비, K-뮤직, K-푸드 같은 문화 상품으로 어렵사리 쌓아온 대한민국 상표를 이 K-정치란 놈이 한 방에 날려버린 꼴이고. 오죽했으면 남의 대통령 선거를 놓고 '이코노미스트'가 "진흙탕"이란 제목을 뽑았을까. 참 별난 구석이 많은 서울발 정치 뉴스로 심사가 복잡할 수밖에는.

다시 원칙으로 돌아간다. 대통령 후보란 건 대통령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이다. 다른 말로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을 오롯이 익힌 다음에 대통령을 하라는 뜻이다. 대통령 후보의 부부관계도 그 학습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은 시민이 선거를 통해 뽑는 헌법기관이다. 그 대통령의 부인은 법적 보호만 받을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지닌 헌법 기능에 그 부인이 기웃거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공과 사를 또렷이 지키라는 헌법의 명령이다. 예컨대 사적 영역인 사업가 남편한테 부인이 훈수를 두는 것과 본질적 차이를 지닌다.

하여 흔히 대통령 부인을 '선출되지 않은 안방 권력'이라 불러온 건 아주 반시민적이고 반헌법적이며 작위적인 말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 박았다. 달리 국민이 위임하지 않은 그 누구도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 부인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만 별난 게 아니라 세상 어디든 민주사회라면 똑같이 내건 원칙이고 약속이다. 이게 헷갈리면 손가락질에다 남우세 당하고 만다. 김건희 말썽이 지난주 외신판을 달궜던 까닭이다.

대통령 후보 부인이 엎지른 물, 그 치다꺼리는 어쩔 수 없이 또 시민사회 몫으로 돌아왔다. 김건희 녹취록이 비록 그 취재와 공개 과정에 적잖은 논란을 낳았지만, 대통령 후보 부인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 놓은 것만큼은 틀림없다. 정치적 이념이나 후보에 대한 호불호나 선거판 유불리와 상관없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대목이다. 원칙은 오로지 하나다. 누구도 헌법적 가치와 그 명령을 깨트릴 수 없다. 그 심판은 시민의 의무다.

중국 주석 마오쩌둥 부인 장칭,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하르또의 부인 시띠 하르띠나…. 헌법기관인 남편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주무르며 국정에 개입한 숱한 부인들이 저마다 시민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사라졌다. 헌법을 유린한 대가는 비정했다. 역사의 가르침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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