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오락가락 이광수의 '2형식'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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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  발행일 2022-03-04 제15면   |  수정 2022-03-0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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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국제 간첩'일 것이다.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담배를 사면서 값을 모르는 사람 등등, 박정희 정권 시절 초중등 학생이었던 대한민국 국민은 그같은 '간첩 식별법'을 배웠다.

1909년 10월26일 거사에 앞서 이토 처단을 시도한 지사가 있다. 그분이 누군지 모른다 한들 아무도 그를 '국제 간첩'으로 내몰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역사 교육은 헛바퀴를 돌고 있다. 독립운동에 관한 인식에서조차 1등만 중시하는 잘못된 사회풍토가 그저 안타까울 뿐!

1905년 11월22일 20대 청년 원태우가 이토의 얼굴을 돌로 강타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비록 이토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을사늑약 체결 후 한껏 들떠있던 이토의 기를 죽이고 일본 제국주의의 체면을 납작하게 만든 쾌거였다.

원태우 지사는 현장에서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다. 지사는 남북상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25일 69세의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다. 태어난 날은 1882년 3월4일.

원태우 지사보다 딱 10년 뒤인 1892년 3월4일 이광수가 태어났다. 독립지사 원태우는 구구절절 설명해야 겨우 조금 알아듣지만, 반민족친일행위자 이광수는 온 국민이 아무 해설 없이도 그 이름을 기억한다. 역사는 이렇듯 당사자가 어떤 언행을 했는가와 관계없이 1등만 기억하는 것인가!

이광수의 대표작은 장편소설 '무정'이다. 주인공은 이형식, 그리고 두 여성 박영채와 김선형이다. 이광수는 지난 시대의 가치관과 신분사회를 상징하는 박영채와 신식사회의 새로운 덕목을 표상하는 김선형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연구자 중에는 이형식의 그 같은 오락가락을 독립운동과 친일 사이에서 헤맨 이광수 본인의 비유적 형상화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2]형식'이라는 이름조차 그러한 이광수의 이중성이 담긴 작명이라는 해석이다.

이형식은 하숙집 주인노파의 구더기 든 된장찌개를 받고도 "참 좋소" 한다. 하지만 "참 맛나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그의 '2형식'이다. 공자는 이미 기원전에 자색은 붉은 빛을 더럽힌다고 규정했다.

공자의 말은 두루 잘 지내려는 유지근성에 대한 엄중한 꾸짖음이었다.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것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국인 중에도 있다. 스스로를 자애로운 인간으로 격상시키려는 그 상상력이 놀랍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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