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치보복과 사법정의의 두 얼굴

  •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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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7   |  발행일 2022-03-07 제26면   |  수정 2022-03-07 07:18
前정권 잘못 정치보복 아닌
사법정의 위해 책임 물어야
인적 청산에만 머물지 말고
잘못된 시스템 수정에 무게
과거를 넘어 더 나은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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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2020년 1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형 판결로 재수감되자 중국의 한 신문은 '한국의 대통령은 왜 가장 위험한 직업이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하야, 망명, 피살, 자살, 탄핵, 투옥 등으로 점철된 역대 대통령의 말로를 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이틀 후면 그 '위험한 직업'을 수행한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전직 국가원수들의 연쇄 수난사를 지켜봤기에 더 이상 한국 헌정사에서 퇴직 대통령이 불행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점에서 죄가 있다면 사법적 책임은 물어야 하지만 그것이 정치보복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따지고 죄를 묻는 것이 정치보복인지 아니면 사법정의인지는 정파와 진영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이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 운동 기간 중에 벌써 이 문제로 여야가 설전을 벌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하겠다고 하자 여당과 청와대는 크게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강한 분노를 표했다.

윤 후보의 발언을 두고 여당은 정치보복 발언이라며 반발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행한 적폐청산 및 전 정권 수사 때는 정치보복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를 청산하라는 국민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발언에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도 했다. 당시 추미애 당 대표는 국가원수의 품위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사법당국의 수사에 협조하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증오와 갈등을 심는 분열의 정치, 보복과 정쟁이 횡행하는 구태 정치를 넘어서자고 말한다. 이 후보의 이런 주장은 원론적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문제는 분열의 정치와 구태의 정치를 극복하는 것이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모든 것을 덮고 넘어가는 것일까 하는 점에서는 진영에 따라 생각이 갈린다는 것이다.

과거를 넘어서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런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여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정권의 잘못에 대해 정치보복적 접근이 아니라 사법정의의 구현 차원에서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정치보복이 되지 않으려면 적폐청산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단죄를 넘어서서 미래의 교훈을 얻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인적 청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잘못을 초래한 시스템을 정립하고 고치는 데에 많은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폐청산이 '오랫동안 쌓인 폐단'인 적폐(積弊)가 아니라 '적(敵)의 폐단'을 단죄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정권의 폐단에만 창을 겨누면 정치보복이 되지만, 자신에게도 엄격한 칼날을 대면 사법정의의 구현이다.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 했다. 정치보복은 없어져야 하지만 사법정의는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과거의 잘못을 넘어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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