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 질러 동거녀 숨지게 한 30대,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 서민지
  • |
  • 입력 2022-06-28   |  발행일 2022-06-29 제8면   |  수정 2022-06-29 08:21
재판부 "간접사실·정황만으로는 동거녀 숨지게했다는 사실 증명 어렵다"
2021021501000496100019941
대구 법원 전경. 영남일보DB

대구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조정환)는 28일 집에 불을 질러 동거녀를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기소된 A(3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1월 3일 오후 5시 4분쯤부터 1시간여 경북 구미의 집에서 동거녀 B(당시 59세)씨와 술을 마시다 다투던 중, 건물주 남편 C씨로부터 전화를 통해 '다른 주민에게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됐다.

A씨는 건물주 집에 찾아가 C씨를 불러 달라고 했지만 건물주는 응하지 않았고, 자신을 따라온 B씨로부터 제지당해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B씨와 계속 말다툼을 벌였다. "이 건물에 불을 지르겠다"라는 말도 했다.

이후 A씨는 건물 주차장 인근에서 집에 있던 B씨에게 "자존심 다 상하고", "살고 싶으면 집에서 나가라. 불 지른다" 등의 메시지를 전송했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2ℓ를 구입해 미리 준비한 빈 페트병에 휘발유를 담아 집으로 이동했다. 당시 그는 지인에게 "형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갑니다"라며 죽음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같은 날 오후 8시부터 20분 사이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불길이 집안 전체로 옮겨 붙게 해 지난해 12월 10일 B씨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휘발유를 사서 들고 집에 들어간 사실은 인정하지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놓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따라 인정되는 간접사실과 정황만으로는 A씨가 불을 놓아 B씨가 숨졌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평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대상은 C씨인 것으로 보이는 점 △휘발유를 구입하러 가기 전 B씨로부터 '불 질러 봐'라는 메시지를 받자, '살고 싶으면 나가라. 당신은 오래 살아야지' 등의 답장을 하는 등 A씨가 집에 불을 질러 B씨에게 피해 입힐 목적과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방화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휘발유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이 종합됐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의식이 없던 B씨가 의식을 회복한 지난해 11월 15일, B씨는 경찰에게 '자신이 불을 붙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허위 진술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법원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의식을 회복한 B씨가 단지 연인 사이라는 이유로 그를 감싸준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사건에서 배심원 9명 중 5명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