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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법원 전경. 영남일보DB |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50대 가장이 대구지법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비교적 단순한 행위를 분담한 가담자라 할지라도 엄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보이스피싱은 다수의 참여자가 각자 분담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체 범행이 완성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대구지법 형사12부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한 B(32)씨의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징역 1년 8월을 선고했다.
통상적인 사례들과 달리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상오)는 지난 20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A(5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범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고 묵시적으로 공모했다는 '미필적 고의'조차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다.
A씨의 공소사실은 이렇다. 그는 지난해 2월 인터넷 사이트에서 '지방으로 출장 가능하신 분, 채권 회수, 연령제한 없음'이라는 내용으로 게시된 구인 글을 보고 연락했다. 정체 불명의 조직원은 A씨에게 "채권을 회수해주면 그 대가로 월 200만원을 지급하겠다"라는 제안을 했고, A씨는 범죄에 가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제안을 승낙해 수거·송금책 역할을 하기로 순차 공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A씨는 8천여 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은행 ATM기에서 무통장입금을 하면서 총 27차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혐의(주민등록법 위반)도 받았다.
지난 20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변호인은 "공소 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배심원에게 호소했다.
A씨 측 주장에 따르면 이력서를 제출하고 신분증, 주민등록등·초본 등 취직에 필요한 서류 일체를 보내는 등 채용 절차가 특별히 이례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A씨는 주범과 텔레그램을 통해 대화를 했는데, 단순한 지시가 기계적, 반복적으로 이뤄질 뿐이었다. 오히려 그는 직장 상사 행세를 하면서 피해자를 '채무자'로 지칭하기도 했고, A씨에게 실명을 밝힌 뒤 채권을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정당한 지시를 받아 채권추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A씨는 은행 ATM기로 현금을 나눠 송금하던 중 송금장애가 발생하자 관리업체에 신고해 자신의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범행(2021년 2월 26일) 이후 조직원과 연락이 되지 않자 A씨는 같은 달 28일 처음으로 '보이스피싱'에 대해 인터넷 검색했고, 같은 해 3월 2일 경찰에 '자수'했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한 점도 확인됐다.
변호인은 "게다가 피고인은 최근 개인회생 신청까지 한 상황이었다. 사기 범행을 벌일 동기가 없었다"며 "또 자수했으므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피해자 대부분과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A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도 변호인 주장과 배심원 평결을 수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채용단계에서부터 앞으로 보이스피싱 등 불법적인 일을 할 것이라고 의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본인의 신분이 노출될만한 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는데, 이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할 법한 행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가 범죄를 통해 실질적으로 얻은 돈은 228만 원 정도인데, 대부분을 교통비 등으로 사용해 수중에 남은 돈이 비교적 많지 않다는 점 등도 참작됐다.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 또한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지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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