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원어민' 영어는 없다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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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9 06:46  |  수정 2023-02-09 06:47  |  발행일 2023-02-09 제22면
'원어민' 영어 실체없는 허상
언어분야 메시지 전달 중요
언어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열린 마음의 자세 바탕으로
명료히 전하는 능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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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지난 금요일 방송된 KBS 대구 아침마당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영어교육 전공으로 캐나다 대학에서 가르치니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가, '원어민(Native Speaker)'처럼 영어를 잘하겠다는 등의 얘기가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20대에서 60대까지 영어공부한다는 지인들이 많아 놀라기도 했다. 방송에서 시간관계상 자세히 얘기 못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원어민' 영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의 개념이고, 따라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원어민이란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을 칭하고 그 정의대로라면 아무리 언어구사력이 뛰어나더라도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은 그 언어의 원어민이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절대로 '(영어) 원어민'이 될 수 없는, 한국에서 태어난 영어학습자들이 '원어민'을 영어학습의 기준으로 삼고 이상적 교사로 선호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이, 수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들이고 비교적 뛰어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들마저 대부분 "나는 영어를 못 해"라며 영어에 주눅 드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흔히 원어민이라고 생각하는 영어 화자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 출신일 텐데 그 나라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는 다 같지 않다.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등 영어가 공용어나 모국어처럼 쓰이는 환경의 나라들을 더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학계에서는 '원어민'이란 표현 자체가 논쟁의 여지가 있고 차별적이라고 보아 교사 채용 공고 등에 '원어민'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단체들도 증가하고 있다. 언어적 차별의 이데올로기적인 뿌리는 언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및 인종주의와도 연관된다. 예를 들어, 흔히 영어 '원어민'은 백인이란 이미지가 강해서, 아시아에 영어 가르치러 갔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원어민' 교사 이미지와 맞지 않아 홀대받았다는, 백인과 흑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캐나다 출생 원어민인 나의 학생의 사례 등은 흔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 입학 때까지 공교육의 산물로 자라 20대 후반에 유학을 간 나의 영어는 '원어민' 같지 않고 나는 그 사실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해서도 내 말과 글을 더 다듬고 싶은 영역이 있듯이 나의 영어에 대해서도 그런 영역이 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그냥 재미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어를 목표로 하면 충분하다. 전문분야로 갈수록 중요한 건 메시지, 즉 아이디어와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그러니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면, 내가 아닌 '원어민'처럼 되려 애 쓰지 말고, 언어문화적 다양성에 열린 자세로, 그들의 언어를 배워 그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의 영어'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꼭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도 특히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한국에서, 비원어민 화자들이 스스로 비원어민을 차별하는 모순은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가지기를 소망하는 주제이다. 그것이 내 직업이 주는 사회적 권위를 빌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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