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루, 마음을 쓰다'

  • 윤경희 청송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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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3  |  수정 2023-02-23 08:06  |  발행일 2023-02-23 제21면

[기고] 두루, 마음을 쓰다
윤경희 (청송군수)

K팝과 함께 K컬처를 이끄는 대표적 종목 중에 한식을 빼놓을 수 없다. 김치·불고기·비빔밥을 넘어 이제는 만두와 라면 같은 가공식품까지도 몇조 원의 매출을 넘겼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상전벽해를 실감한다. 필자의 짧은 견해에 비춰 한식의 미학은 섞고, 끓이고, 비벼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본다. 예상할 수 있는 그 맛의 식재료로 전혀 다른 식감과 풍미의 음식을 창조해 내는 조리법이야말로 선조의 지혜와 통찰이 고스란히 담긴 혜안이었을 터.

그런 조리법으로 탄생한 음식 중에 '두루치기'라는 것이 있다. 경상도 지방의 향토 음식인데, 철 냄비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익혀 먹는 조리법이다. 단언컨대 이 두루치기만큼 소박하고도 매혹적인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그 이름도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다. 주재료의 칭호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김치 두루치기, 돼지 두루치기, 두부 두루치기…. 이렇게 말이다.

사실 이 요리법의 포인트는 바로 '두루'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서두가 이토록 길었다. '빠짐없이 골고루'란 사전적 의미의 부사어 '두루'를 한국인은 참 즐겨 사용한다. 그건 어쩌면 '두루'라고 발음할 때 어감도 어여쁜 데다가 공동체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처럼 친근하고 여럿을 아우르는 협동과 화합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도 새해 첫날부터 두루, 마음을 써보고자 일을 하나 벌였다. 우리 군에 모든 승객이 공짜로 탑승할 수 있도록 무료버스를 도입한 것이다. 전국 최초다. 확언하자면 이 정책을 놓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방소멸 시대에 군민은 물론 관광객·외국인 등 청송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교통복지를 지원하고 싶었다. 그러면 65세 이상 인구가 약 40%를 차지하는 지역민의 피부에 직접 와닿은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뿐더러 청송군의 홍보도 자연스레 이끌어 올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기대는 적중했다. 한 달 정도 시행해 본 결과 보편복지의 추구 말고도 경제활성화라는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우선 주민의 반응부터 폭발적이었다. 볼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동네로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고, 버스를 탈 때에도 따로 현금을 준비하는 번거로움이 없어 훨씬 수월하다는 칭찬 후기와 함께 예전보다 20% 이상 이용객이 늘어난 것이다. 주민의 이동량이 증가함에 따라서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는 효과까지 불러왔다. 더불어 '산소카페 청송군'의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탄소중립에도 이바지할 수 있었다.

연간 3억5천만원의 정책자금으로 일석삼조의 이득을 톡톡히 누리게 된 셈이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듯이 되었다. 두루두루, 어디 하나 손해 없이 이득을 가져 가게 된 것이다. 두루 마음을 쓴 결과가 이토록 주옥같으니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지자체에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둘러앉아 두루치기를 함께 나눠 먹는 심정으로 말이다.

청송에 방문할 모든 사람에게 전해 본다. 이제 청송에 오면 자가용 시동을 잠시 꺼놓고, 안전하고 부담 없는 시골버스를 한 번 타 보라고. 그러면 전국 어디에 가도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하고 이색적인 관광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과 주왕산국립공원, 산소카페 청송정원 같은 천혜 자연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빼어난 명소를 둔 곳의 지자체장으로서 넌지시 내뱉는 자랑이자, 두루 쓰는 마음이다.

윤경희 〈청송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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