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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새로운 형태 국가주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강화
일상적 만남 막는 장벽에 저항
도시혁명은 탈국가주의를 지향한다.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는 국가주의였다.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는 파시즘의 광기를 머금었다. 도시혁명은 20세기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를 가로질러 뛰어넘는 탈주선이다.
20세기 한국 사회가 경험한 국가주의는 도시적 직조와 '도시적인 것'을 파시즘적 폭력을 통해 억압한 예외적인 상황의 결과물이다. 20세기에 달성한 한국 사회의 높은 경제적 성취는 '도시적인 것'의 유동성을 단단하게 응고시켜서 획득한 편집병적인 성과이다. 한국 사회에서 도시에서의 만남과 마주침을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분리와 장벽은 국가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도시적인 것'은 국가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허용되었고 서울이야말로 국가주의가 남겨놓은 '증상(symptom)'적 잔여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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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에 대항하는 지역학은 국가주의는 물론이고 그 증상으로서의 서울을 통해 억압된 '도시적인 것'을 복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 사회의 도시에서 만남과 마주침을 통해 생성되는 일상을 복원시켜야 한다. 도시혁명은 일상의 만남과 마주침을 가로막는 분리와 장벽에 저항하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역학은 탈국가주의의 임계지점(critical zone)을 가로질러 관통하는 욕망의 흐름을 생성하는 주체의 행위이다.
지역학 연구는 향후 도래할 미래를 위한 학문의 성격이 강하다. 20세기의 유산인 강고한 국가주의를 뛰어넘어 21세기 도시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에 지역학이 기여해야 한다. 모든 혁명은 도래할 미래를 나름의 방식으로 설계한다. 지역학이 설계하는 도시의 미래는 활발한 만남과 마주침을 통해 순환적 생명의 리듬이 회복된 장소이다.
지역학이 퇴행적 부족주의의 강화와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회고를 통해 복고주의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20세기의 국가주의에 봉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역학이 동원되거나 활용되는 상황을 거부해야 한다. 지역학이 국가주의에 대항하고 21세기의 도시혁명을 통해 도래할 미래를 설계하고 전망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유럽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 지구적 냉전의 스케줄과 일치한다. 20세기 방식의 제국주의와 냉전은 후퇴하고 있지만 21세기 들어 새로운 형태의 국가주의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화되고 있다. 20세기 방식의 허구적 이념이 동아시아에 기형적으로 강화되는 현실을 지역학은 비판적인 입장에서 주목해야 한다.
지역학이 추구하는 리좀적 체계는 열린 체계이자 가변적인 체계이다. 리좀적 체계에서는 작고 부분적인 연결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진화의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관계된 모든 주체들을 유도해낼 수 있다. 동아시아 도시 연대의 매개로 지역학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동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역사적인 국가주의의 부활에 대하여 동아시아 도시 연대를 구상하는 역할을 지역학이 시대적 과제로 떠맡아야 한다.
지역학 연구의 미래는 학제 간 연구의 가능성에 달려 있다. 국가의 리듬과 도시의 리듬은 다르다. 국가의 리듬에 맞추어 생산된 학문적 구획을 그대로 차용하여 도시의 리듬을 연구하는데 적용하는 것은 성립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학 연구는 기존의 학문체계가 세워놓은 분리와 장벽을 과감하게 뚫고 가로지를 때 새로운 방법론으로 주체적 성격을 내세울 수 있다.
해러웨이가 선언하고 있는 것들이, 즉 사람이 기계와 교섭하고 반려종과 신체를 섞는 일이, 지역학 연구의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을까. 도시적 직조의 본질인 만남과 마주침을 기존의 학문 경계를 넘어서 학제 간 방식의 연구를 통해 실현하는 일은 지역학이 향후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의 하나이다.
김영철<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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