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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
모든 직업은 사회기여형이다.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직업은 없다. 있다면 직업이 아니다. 사기 공갈을 일삼는 것은 직업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이더라도 욕을 먹는 경우는 있다. 종사자로 인해 직업 자체가 욕을 먹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이다. '○○(직업)는 도둑놈'도 한 예가 된다.
1970년대 말 사회부 초년기자 때 경찰출입을 하던 어느 여름날 어린이 익사사고가 발생했다. 그때는 숨진 경우 인물사진을 구해야 했다. 사진을 구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거쳐 주소지로 향했다. 어느 집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가 뒤에서 신문사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X파리처럼 냄새 맡고 빨리도 오네"라고 했다. 병아리 기자인 나는 움칠했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불특정의 주민이 불특정의 기자 쪽에다 무심결에 하게 된 이 말을 나는 곱씹었다. '이 사회가 기자를 이렇게도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자 하면서 가슴 깊이 새겼다. 언론자유도 없던 당시 기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직분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는 '냄새'나는 현장에 나타나 돈을 뜯기도 했던 모양이다. 언론자유를 누리는 지금도 기자들이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검찰을 잠깐 출입하면서 느낀 것은 검사들이 순하고 착하다는 점이었다. 체구도 작고 호리한 편이었다. 검찰취재시스템이 차장검사 중심으로 돼 있어 평검사를 두루 만난 건 아니지만, 검사들은 고시 공부만 해서 그런지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맑고 유순해 보이는 이런 검사들이 온갖 범법 피의자를 다룰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건국 이후 처음으로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된 후 검사로서는 영광스럽겠지만 어느 자리도 검사 출신, 어느 자리도 검사 출신으로 '검사천국이 됐다'는 둥 검사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워진 느낌이다. 더구나 검사 출신이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 학폭 문제가 불거져 하루 만에 사퇴했지만 가해 아들보다 해당 검사 출신이 아들만을 위해 끝까지 소송을 벌인 게 드러나 비난을 받으며 사회문제가 돼버렸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했다는 검사 관련 말도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잘하면 좋은데 잘못하면 직업 전체가 욕을 먹는다. 지금 검사 직업이 그런 것 같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의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2020년 9월 검찰은 윤미향을 보조금 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과 배임, 사기, 준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등 9개의 혐의로 기소했다. 2년 반 만인 지난달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윤미향에게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했을 뿐이다. 업무상 횡령 일부를 제외한 사기, 준사기 등등 8개는 모두 무죄라는 판결이다. 항소심에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으나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은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대부분 검사는 맡은 일을 충실하게 잘 수행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는 한 번도 안 하고 누구는 문지방이 닳도록 수백 번 압색하는 검찰이 형평성이 있다고 할 순 없다. 내 편 네 편 떠나서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검사는 보수 인사도 진보 인사와 같은 수준으로 할 수 없는가. 진보 인사도 보수 인사와 같은 수준으로 하면 안 되는가. 사람보다 위반 자체에 법을 적용해야 하지 않는가. 사회에 기여해야 함에도 오히려 해를 끼쳐 직업이 욕을 먹게 한다면 되겠는가. 무엇이 바람직한 검사상인가.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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