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카지노, 타이 정치판 화두로…선거철 밀당 이슈 '카지노 합법화'…도박 천국 타이의 선택은?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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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1  |  수정 2023-03-01 07:25  |  발행일 2023-03-01 제8면

[정문태의 제3의 눈] 카지노, 타이 정치판 화두로…선거철 밀당 이슈 카지노 합법화…도박 천국 타이의 선택은?
카지노 합법화가 타이 총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정문태의 제3의 눈] 카지노, 타이 정치판 화두로…선거철 밀당 이슈 카지노 합법화…도박 천국 타이의 선택은?
타이 사람들이 주 고객으로 '범죄도시'란 별명이 붙은 킹스로먼스 카지노. 골든트라이앵글의 라오스 쪽 메콩강둑에 자리 잡은 이 카지노는 마약 밀매, 아동 성매매, 인신매매, 야생동물 판매 혐의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정문태 방콕특파원

지난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노트북 없이 동네 커피숍 정원에 앉았다. 눈을 씻어주는 초록빛 숲, 코를 파고드는 풀냄새, 귀를 간질이는 새 소리, 입을 깨우는 에스프레소, 목덜미를 파고드는 하늬바람…. 흔치 않은 오감의 즐거움에 스르륵 녹아들 즈음, 나무 그늘 한쪽에 앉아 아이팟을 두드리던 사내 셋이 함성을 질러댔다. 알고 보니 온라인 카지노에서 1만밧(38만원)이 터졌다고. 건축업자라는 솜폰(42)은 "심심풀인데, 잃을 때가 많지만 십만밧도 당길 수 있다"며 한껏 흥이 올랐다. 호젓한 아침은 물 건너갔다.

"도둑 열 번 당해도 집은 남고, 불 열 번 나도 땅은 남지만 노름 한 번은 아무것도 안 남는다." 타이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인데 말 그대로 도박에 대한 경고다. 속담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타이에서 도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타이에는 예부터 닭싸움, 소싸움, 배싸움 같은 100여 가지 전통 도박이 있었다는데, 17~19세기 외국 상인과 이주민이 밀려들면서 카드와 복권을 비롯한 새로운 도박이 주류사회로 파고들었다고 한다. 특히 1820년 중국계가 퍼트린 화복권이 맹위를 떨치자 라마 3세 국왕은 아예 도박장을 허용해 세금을 거둬들였고. 그러나 범죄자와 파산자가 늘어나자 1917년 라마 5세 국왕이 도박 금지령을 내렸다. 이어 1935년 제정한 도박금지법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정부 운영 복권·경마 외 불법이지만
성인 70%가 사설 도박판에 열 올려
경찰·정치인 낀 불법 카지노 버젓이
불교사회 '지옥문' 경구조차 안 통해

5월7일 치르는 총선 득표전 막 올라
쁘라윳 총리 추락하는 관광산업 틈타
카지노 포함된 유흥단지 개발 내걸어
정당·시민사회 등 찬반 논란 불거져
정치에 숨죽였던 불교계 행보도 주목



현재 타이에서는 정부가 운영해온 복권과 경마를 빼고 모든 도박이 불법이다. 그렇다고 도박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인과 경찰을 낀 불법 카지노가 방콕 한복판에서도 벌어졌고, 사설 복권에다 스포츠 도박에다 온라인 도박까지 버젓이 판친다. 예컨대 축구는 가히 국민도박으로 부를 만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술집마다 대형 화면을 걸어놓고 난리가 난다. 가끔 본보기 감으로 수천 명을 떼거리로 체포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특히 온라인 도박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데 그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고. 디지털경제 사회부에 따르면 확인한 것만 따져도 2020년 한 해 동안 10억밧(380억원)이 도박 사이트로 흘러갔다고 한다.

"타이의 도박 규모가 9억~12억달러(1조1천900억~1조5천900억원)에 이르고, 6천700만 인구 가운데 성인 70%가 불법 도박을 한다." 하원의원 삐 쭈아무앙판 말마따나 가히 도박 천국이다. 타이의 도박 열기는 합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가 발행하는 격주 복권을 성인 인구의 반이 넘는 2천500만이 구입할 정도니.

'아바이야묵'이라고 우리말론 '지옥문'쯤 될법한 개념어가 있다. 살인, 도둑질, 거짓말, 간통을 4대 악행이라 가르쳐온 타이 불교에서 도박은 곧 그 지옥문행이다. 인구 95%가 불교도인 타이 사회에서 누구나 아는 이 경구조차 안 통한다는 뜻이다.

어디와 다를 바 없이 타이에서도 도박은 개인의 재산 문제뿐 아니라 강도, 폭력 범죄 같은 사회 문제를 낳았지만, 한편으론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불법에 아랑곳없이 장례식이나 결혼식이나 무슨 잔치마다 도박판이 벌어지는 걸 보면 놀이문화인가도 싶은 게.

5월7일 총선을 향한 선거운동 막이 오른 요즘 도박이 곧 타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를 낌새다. 더 또렷이 말하자면 카지노 합법화 문제다. 카지노는 20년도 넘게 끌어온 해묵은 논란거리였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슬쩍 내밀고 눈치 보다 집어넣곤 했던.

그러다 2014년 탱크몰이 쿠데타로 권력을 쥔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코로나로 경제 위기를 맞자 다시 카지노를 꺼내 들었다. 쁘라윳은 국내총생산의 20% 웃도는 관광산업이 치명타를 입고 비틀대는 사회 분위기를 틈타 2021년 12월 의회에 '유흥복합단지 합법화 심의 특별위원회'란 걸 만들었다. 참고로 그해 관광객 수가 기껏 43만명으로 코로나 직전 4천만명을 웃돈 2019년에 견줘 1%가 채 못 되었다.

그 유흥복합단지의 고갱이가 바로 카지노다. 그리고 특별위원회가 올 1월 중순 카지노 합법화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내각에 넘겼다. 최종 결정은 차기 정부 손에 달렸겠지만 정가에선 합법화를 시간문제로 본다. 이르면 2~3년 안에 타이에서 합법적인 카지노판이 벌어질 듯.

특별위원회 보고서는 유흥복합단지를 카지노, 오성급 호텔, 쇼핑몰, 놀이공원, 동물원, 온천, 스포츠로 구성하고, 방콕과 푸껫, 치앙마이, 치앙라이, 콘깬, 농까이를 비롯한 국경 낀 관광지역 22곳을 후보지로 제안했다. 그 보고서는 카지노 합법화로 정부가 연간 최소 1천억밧(3조8천억원) 세금을 거둘 수 있다며 내친김에 카지노, 빙고, 주식, 환율, 스포츠, 복권을 비롯한 여덟 가지 온라인 도박 합법화까지 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특별위원회가 유흥복합단지의 민관 공동개발안을 내놓자마자 그동안 타이에 눈독을 들여온 라스베이거스 샌즈와 엠지엠 리조트 인터내셔널 같은 공룡 카지노기업이 곧장 관심을 드러내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특별위원회의 장밋빛 보고서와 달리 카지노 합법화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적잖아 보인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카지노 합법화 욕망을 탐탁잖게 여기는 시민사회 기운이 만만찮다.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80.7%가 유흥복합단지 계획을 찬성한다는 수안수난다라차밧대학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댔지만, 올 1월 국립개발행정연구소 여론조사에서는 39% 찬성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반대가 57%로 크게 두드러졌다.

"보고서가 카지노를 반대하는 시민한테 아무런 감동을 못 줬다. 카지노로 챙길 수익에만 열 올렸지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호 장치도 없고 범죄가 불러올 사회적 비용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스톱 갬블링 파운데이션(SGF) 사무총장 타나꼰 꼼끄리스 말마따나 시민사회는 냉담했다.

실제로 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훑어보면 카지노 개발, 운영, 관리를 위한 투명성도 희미하고, 도박으로부터 시민과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없다. 기껏 제한 조항이랍시고 타이 시민의 카지노 입장에 최근 여섯 달 동안 50만밧(1천900만원) 은행 잔고 증명서를 요구한 게 다다.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 국경에 걸친 수십 개 카지노의 고객 90%가 타이 사람이다. 정부가 국경으로 빠져나가는 그 연간 400억밧(1조5천억원)을 막겠다는 게 카지노 합법화 이유 가운데 하나지만 그런 제한 조항 따위론 현실성 없다." 사회학자 솜끼앗 시수완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타박했다. 타이의 꾼들이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닿는 국경 카지노를 두고 굳이 골치 아픈 제한 조건 맞춰가며 타이 카지노를 찾을 까닭이 없을 테니.

카지노 합법화를 낀 논란은 결국 카지노 지지 정당과 반대 정당, 카지노 설치 후보지 시민의 찬반 논란이 겹쳐질 이번 총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앞에서 기를 못 펴는 불교계가 어떤 소리를 낼지도 지켜볼 만 하다. 시민사회에서는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카지노가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골병든 닭으로 끝날지 아직은 좀 흐릿하다. 다만 또렷한 건 하나 있다. 카지노를 향한 타이 시민의 속내가 머잖아 드러날 것이고, 뭐가 됐든 시민사회 뜻을 거스르는 정치권력은 그게 한국에서든 타이에서든 모조리 비극으로 끝났다는 사실. 타이의 카지노 합법화를 눈여겨보는 까닭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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