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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형수님이 어머니께 조카딸의 흉을 본다. 결혼할 생각은 안 하고 개를 돌보는 데에만 진심이라고, 직장에서 번 돈은 개 앞에 다 들어갈 정도로 개가 생활의 중심이니 어쩌면 좋으냐고 푸념을 하신다. 지금이야 개가 남편보다 선순위의 가족이 되었지만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개는 애완동물이면서 동시에 식품이었다. 큰 병을 앓은 후에 먹는 회복식의 대명사였으며 여름이면 불을 피우고 버드나무에 개를 매다는 광경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삼복더위를 넘기는 계절음식의 재료였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였는지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송아지만 한 셰퍼드를 보았다. 집에 와서 본 걸 말씀 드리니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급히 나가셨고, 그날 저녁 야외에 솥을 걸고 떠들썩한 동네잔치가 벌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가 개를 먹는 우리를 야만시하면서 88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떠들어 잔치 준비에 바빴던 정부를 잔뜩 긴장시킨 적도 있었다. 실제 정부는 올림픽 무렵 전국의 보신탕집을 일제히 정비했고, 그 때문에 '보신탕'이라는 기능에 특화된 명칭이 '사철탕'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 인류의 주된 사망원인 중 하나가 여전히 아사(餓死)임에도 동네 마트마다 개 사료가 사람의 양식만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고 굶는 아동과 소고기를 먹는 개가 섞여서 무난하게 살고 있는 곳이 지금 대한민국이기도 하다. 매년 버려지는 개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우리가 더 이상 개를 먹지 않아 생긴 것이라고 강변하는 개고기 예찬론자도 있지만, 소유권의 객체인 '물건'에서 개를 빼라는 민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고 예전처럼 개를 개 취급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죄로 징역을 살 수도 있으니 바야흐로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현실이 된 셈이다.
이처럼 인간과 가장 친숙한 가축으로 사람에 준할 정도로 개의 존재가치가 높아졌지만, 아직도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는 그 대접이 미미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들은 행실이 나쁜 사람을 천하게 비유하면서 '개 같은 놈'이라고 하고, 매우 짜증 나는 황당한 상황을 '개판이다' '개 같다'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 허무맹랑한 경우가 개인적인 관계에서 벌어진 것이라면 '세상에 별놈 다 있다'면서 '개무시'하면 되지만, 그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주권자인 국민을 개 취급하는 것이라면 이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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