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추구의 끝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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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30 08:13  |  수정 2023-12-12 10:12  |  발행일 2023-10-3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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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늙으면 참을성이 줄어들고 조바심이 늘어난다. 이제는 미룰 수 있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늙으면 욕망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노인이 되어 추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제프 포스터는 '가장 깊은 받아들임'에서 우리가 미래에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은 항상 지금 이 순간을 불완전하게 느끼는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므로 인해 우리의 모든 고통과 추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 '물질이나 정신'이 아니라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획득할 때 얻게 되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그렇다. 추구의 대상은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소유'했다고 느낄 때 갖게 되는 마음의 상태다.

당신이 새 차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욕망은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동안에도 항상 당신을 괴롭히고 고통을 줄 것이다. 마침내 새 차를 가지게 되었을 때 당신은 갑자기 행복함을 느낀다. 왜 그런가? 그것은 새 차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즉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새 차의 소유가 아니라 욕망의 갑작스러운 부재다. 이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추구의 끝'이다. 욕망 추구의 끝에 도달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머물 수 있다.

미국의 시인 데이비드 웨더포드는 '더 느리게 춤추라'는 제목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중략>------

걱정과 조바심으로 지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평온하게 자란 아이들도 일정 나이가 되면 기본적인 분리감을 가지게 된다. 이 분리감이 곧 결핍감이며 이때부터 아이들은 '추구하는 자'가 된다. 이는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 성장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의 의식은 항상 대상을 향하고, 대상을 향하는 의식은 경계를 가지고 서로 분별된다. 그렇지만 그 분별이 일어나는 의식의 공간은 경계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공간에 어떤 대상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의식에는 대상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내 몸도 그 안에 있고, 내 생각과 감정도 그 공간 속에 있다. 이처럼 나와 세계를 다 포함하고 있는 이 공간을 '나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간으로서의 의식, 즉 순수의식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깨달음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공간을 알아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늘 이 공간 속에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으로 알려고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이 공간 속에 있고 따라서 늘 깨달음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깨달음의 체험을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기에 이미 늘 깨달음의 체험을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알지 못한다.

물고기에게 물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때는 물고기를 물 밖으로 꺼내 놓으면 된다. 깨달음은 깨달음의 추구라는 생각 바깥에 항상 존재한다. 깨달음에는 어떤 시간도 필요하지 않고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대부분에게는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아무 노력도 없이 당장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된다.

우리가 정말로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이미 우리가 찾으려는 것임을 발견하는 일이다. 행복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평화는 달려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추구의 부재다. 사랑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의 죽음, 달콤하고 쓰라린 아픔 속에서 오늘을 온전히 끌어안는 일이다.

노인이 되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다. 희망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망이 없이 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희망이 죽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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