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故 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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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9 08:09  |  수정 2024-01-19 08:20  |  발행일 2024-01-19 제14면
이슈에 탐닉하는 대중, 미디어가 초래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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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둘러싼 철저한 진상규명과 향후 재발방지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 제공〉

스페인 영화 '떼시스'(1996년)는 미디어의 관음증,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릴러 영화다. '스너프 필름'이라는 당시에는 생소한 소재를 다뤘던 이 영화는 19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스너프 필름(snuff film)'은 실제 살해, 모살, 자살의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떼시스'는 '논문'이라는 스페인어로 영화의 주인공인 대학생 안젤라는 '영상물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안젤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점점 더 강력한 영상을 원하게 되었고, 지도교수는 논문을 도와주고자 관련 영상물을 찾던 중 한 스너프 필름을 발견하고 이를 시청하는 도중 사망하게 된다. 스너프 필름의 실재에 대해 알게 된 안젤라는 불법 영상물을 수집하는 친구 케마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급격하게 변하고 팽창하는 미디어
유튜브·SNS서 자극적 콘텐츠 생산
보호장치 없이 매체에 노출된 배우
극단적 선택으로 사회 큰 충격 안겨

이선균 배우가 세상을 등졌다. 그 안타까운 소식에 불현듯 떠오른 영화가 '떼시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있어 미디어, 혹은 언론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마약' 사건에 대한 당국의 실적 채우기가 원인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음모론을 들고나온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분명한 것은 미디어의 책임일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야만 했다. 물론 SNS상의 정보와 포털의 뉴스 등은 결국 각자가 그것을 보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그것은 이미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고, 지금과 같이 고도화된 정보통신 시스템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는 스스로 보지 않고 듣지 않고자 하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시스템은 '알 권리'는 충분히 보장해 줄지 모르지만, '모를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는다. 결국 개인의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들을 강제로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미디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거름망이 없는 이러한 미디어는 결국 레거시 미디어마저 움직이게 한다. 이들이 전파하는 자극적인 소재를 레거시 미디어는 거부하지 않는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떼시스' 속 공범자인 교수는 스페인의 영화는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이유는 관객이 그러한 영화를 원하고 있고, 또 비즈니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미와 비즈니스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위 '유튜버'들이 더 자극적인(그들의 입장에선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찾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시, 그 교수의 입장에서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누군가가 더 자극적인(재미있는) 콘텐츠를 원하고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에, '스너프 필름'을 만들어도 괜찮은 것이다. 단지 개인뿐만 아니라 레거시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텔레비전 방송국은 국민의 알 권리를 명분 삼아 '스너프 필름'에 담긴 영상을 뉴스로 고스란히 내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충격 속에서 사람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추모의 글에서 범죄혐의가 확정되기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되었고, 구체적인 수사 상황과 확인되지 않은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는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지난 12일에는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성명서 발표가 있었다. 여기에 봉준호, 윤종신 등을 포함해 29개 문화예술단체가 함께 한다고 한다. 모두가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반드시 필요한 목소리이고,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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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미디어 세계는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하고 팽창해 나가고 있다. 제어할 수 없다면 근원적인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왜 더 큰 자극과 재미를 계속 추구하는가, 혹은 추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 '본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쓴 작가 존 버거는 '고통의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한 사진을 보는 순간 대중들은 그것의 충격으로 인해 자신의 도덕성을 탓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도덕적 무능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부 행위와 같은 것을 한다. 대중들은 그러한 행위들로 일종의 속죄를 하지만, 그로 인해 그 참혹한 현상이 벌어지게 만드는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줄 수 없게 된다. 사진으로 촬영된 '고통스러운 순간'과 대결하는 것은 한층 더 광범위하고 시급하게 대결해야 하는 것들을 덮어씌워 감춰버리게 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우리 사회의 반성과 더불어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담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곧 발전인 마냥 뒤쫓기보다는 그 변화가 가져올 위기와 부조리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짜 미디어의 역할이 아닐까. 그럴 때 현실판 '스너프 필름'과 같은 일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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