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밀양 삼랑진읍 트윈터널…터널 들어서자, 빛의 세상이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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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2 08:19  |  수정 2024-02-02 08:28  |  발행일 2024-02-02 제15면
무흘산 뚫은 경부선 철도 복선 터널
KTX 개통되면서 '異세계'로 재탄생
은하수 향연-해저 탐험 구간 나뉘어
정신 놓고 보다가 시간의 무게 잊어
황금빛 가을 끝엔 쉬어가라는 카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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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트윈터널의 입구 가림막을 헤치고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진다. 엄청난 빛의 세상이다. 은하수 속이다. 1억 개의 LED빛이 온 몸을 감싼다.

삼랑진나들목을 나와 밀양 방향으로 간다. 곧 오른쪽으로 미전 농공단지가 보이고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 고갯길을 미전고개라 한다. 미전리의 고개다. 옛날 미전고개 근처에 무흘역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무을이역(無乙伊驛)이라 했고 조선시대에는 무흘이역(無訖伊驛), 무걸이역(無乞伊驛), 무흘역 등으로 불렸다. 미전리 서편에 있는 200m가 조금 넘는 산을 무흘산이라 했고 그 아래 마을도 무흘이라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무흘은 일제 강점기에 무월(無月)이 되었다. 무흘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월은 알겠다. 달이 없다는 뜻이다. 미전고갯길에서 트윈터널 이정표를 따라 무월산 북쪽자락을 밟고 넘는다. 넓은 하우스 밭이 큰 강처럼 펼쳐지고 그 너머로 밀양강 둑이 희미하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KTX 경부선과 대구부산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 무월산 터널과 화성 마을

무월산을 뚫는 경부선 터널과 고속도로의 터널 입구가 보인다. 그 앞쪽에 더 오래된 두 개의 터널이 있다. 오른쪽 터널은 조금 크고 밋밋한 콘크리트 터널이다. 왼쪽 터널은 조금 작고 전면에 장식을 가미한 벽돌 터널로 아치 위에 식산흥업(殖産興業)이라 새겨져 있다. 1897년 10월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였다. 고종은 형식적인 칭제(稱帝)가 아닌 실제로 막강한 황제권을 보장하도록 제도를 마련하였고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정책을 추진해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근대적 경제체제 건설을 위한 식산흥업정책이다.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은 철도와 통신 등 기간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대한제국 정부를 주체로 하는 철도 부설이 추진되었지만 실현은 어려웠다. 경부선 철도는 1898년 일본과 한국이 공동 경영한다는 조약을 체결하지만 결국 일본이 부설권을 장악하게 된다.

식산흥업 터널은 경부선 철도 구포~밀양 구간의 하행선 터널로 1902년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이후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했고,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각종 광물을 원활하게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 기찻길을 만든다. 부산항으로의 물자수송이 증가하자 경부선 대전~삼랑진 구간을 복선화하면서 1940년 또 다른 터널을 개통하게 된다. 나란히 자리한 두 개의 터널은 '무월산 터널'이라 불렸다. 터널이 뚫리고 기차가 달리면서 무흘마을은 화성(火聲, 火城)마을이 되었다. 화통차가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마을이다.

무월산 터널은 2004년 밀양에 KTX가 개통되면서 역할을 마감했다. 폐 터널로 13년여간 방치되어 있던 터널들은 2015년부터 시작된 재생사업을 거쳐 2017년 6월27일 빛으로 가득한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하였다. 지금은 '트윈터널'이다. 나란한 아치가 쌍둥이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구로 이용되는 하행선 터널은 길이가 443m, 입구로 이용되는 상행선 터널은 길이가 457m이다. 터널 앞 잡풀 우거졌던 터에는 식당 겸 매점과 달고나 체험, 카트체험, 닥터피시 체험, 모래놀이장, 그네놀이터, 풍선 놀이터가 자리 잡았다. 입구 터널 상단에 보선차량이 놓여 있다. 실제 사용하던 전기식 모터카차량이다. 제 역할을 다하고 철길에서 내려온 저이도 이곳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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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세상에서 푸른빛의 세상으로 이어진다. 수천 개의 유성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어느 사막에서 유성비를 맞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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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깊은 물속으로 들어서면 바다거북과 고래가 노는 해저계곡이 길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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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계곡을 빠져나가면 용궁과 같은 성이 나타난다. 갑자기 수많은 물방울들이 뿜어져 나온다. 용궁 앞에서 하행성 터널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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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터널 혹은 사랑의 터널. 사람들이 남겨놓은 각종 소원과 사랑의 맹세로 빼곡하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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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은 황금빛 밭이다. 붉고 푸르고 노란 단풍나무가 있으니 벼라고 하자. 가을이다.

◆ 빛의 세상, 트윈터널

입구 가림막을 헤치고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진다. 빛의 세상이다. 엄청난 빛의 세상이다. 은하수 속이다. 1억 개의 LED빛이 온몸을 감싼다. 걷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유영하는 듯하다. 수천 개의 유성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어느 사막에서 유성비를 맞는 기분이다. 이제 물속으로 들어선다. 푸른빛이 신비로운 블루크로우 가재, 로켓 모양의 로켓가아피시, 오묘한 색상의 칼라테트라, 천사 같은 엔젤피시, 귀여운 도롱뇽인 우파루파, 쥐라기 중기에 처음 출현한 역사 깊은 폴립테루스, 현대에 교잡되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플라워 혼, 무지갯빛이 나는 글라스켓, 민물에 산다는 파하카 복어,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는 수마트라, 그리고 거북이와 철갑상어도 있다. 어둡고 긴 터널의 가운데에서 저들만의 빛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있다. 수족관에 이마를 붙이고 보고 또 본다. 물고기들의 세계를 지나 더욱 깊은 물속으로 들어선다. 바다거북과 고래가 노는 해저계곡을 빠져나가면 용궁과 같은 성이 나타난다. 갑자기 수많은 물방울들이 뿜어져 나온다. 사람을 이렇게 홀리나.

용궁 앞에서 하행 터널로 넘어간다. 물속은 갑자기 하늘이 된다. 하늘과 가까운 성이 오색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이제 사랑 많은 공주님처럼 땅으로 향한다. 각종 소원과 사랑의 맹세로 빼곡한 하트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은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보리밭이다. 아니 밀밭인가? 붉고 푸르고 노란 단풍나무가 있으니 벼라고 하자. 황금빛 가을의 끝에는 카페가 있다. 숨 가쁘게 왔으니 조금 쉬어가라는 듯. 커피와 차, 에이드, 스무디, 각종 디저트류가 있고 딸기맥주와 사과와인도 판다. 딸기 시배지인 삼랑진의 딸기와 밀양 사과로 만든 술이다. 맥주도 사고 와인도 사고 땅콩 한 봉지 얻어 들고 든든하게 겨울나라로 간다. 북극곰이 있고 산타와 루돌프가 있고 눈 속에 기차가 다니는 마을을 천천히 지난다. 저기에 'see u'라고 적힌 마지막 장막이 보인다. 그 길을 연분홍 벚꽃 잎들이 빽빽이 늘어서서 배웅한다. 겨울 지나 봄을 맞듯 세상으로 나간다.

트윈터널은 신비한 해저 세계를 탐험하는 '해저터널'과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빛의 터널' 두 구간으로 나뉘어 있고 아쿠아 빌리지, 피시솔저, 아쿠아 캐슬, 차원의 길, 별빛마을, 드래곤 캐니언, 페스티벌, 트윈카페 등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프린세스 캐슬, 밤하늘 우주 드래곤, 사랑의 약속, 요정의 숲, 카툰갤러리, 사계절 카페, 꽃 터널 포토 존, 용궁 캐슬, 물고기나라, 바닷속 친구, 빛의 요정터널 등의 이름도 언급된다. 정신을 놓고 못 본 것인지 안내가 없는 것인지 혹은 종종 테마가 바뀌는 건지 모르겠지만 몇몇 구간의 명칭은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곳곳에서 만나는 캐릭터들도 이름을 몰라 인사도 못 건넸다. 뭐 어떤가. 많이 미소 짓고 많이 뭉클했으니 그만이다. 시간의 무게도 질료의 무게도 잊는다. 꿈같은 빛 속에서 계절도 잊고 시간도 잊고 추위와 더위도 잊고 진세도 잊는다. KTX 열차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다. 잠시 후 또 다른 기차가 쌩하니 지나간다. 아마도 화물열차겠지. 또 잠시 후 색색의 컨테이너를 줄줄이 매단 기차가 지나간다. 그리고 젊은 연인이 팔짱도 끼지 않은 채 트윈터널을 향해 걸어간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앞 삼거리에서 밀양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 정면에 신세계푸드 건물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트윈터널 이정표 따라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고개를 넘으면 트윈터널 공영주차장이 자리한다. 주차는 무료다. 트윈터널 입장료는 어른 8천원, 청소년 6천원, 어린이 5천원이며, 체험료는 별도다. 연중무휴이며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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