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흰색 (white), 色으로 드러낸 계급…아무나 가질 수 없던 신성함 상징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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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6 08:05  |  수정 2024-02-16 08:09  |  발행일 2024-02-16 제13면
16·17세기 유럽 상류층 착용 '러프'
권위 상징 꼿꼿한 옷깃은 주로 흰색
19세기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
대리석 조각상 모방한 흰색 원단
아시아에서도 예복에 사용한 컬러
문화적 가치·의미 반영하며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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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흰색의 엠파이어 드레스 〈출처: matthiesengallery.com〉

최근 인테리어 관련 기사나 사진을 보면 벽지, 바닥, 주방 싱크대 등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된 주거 공간이 인기이다. 또한 섬유·가공 기술의 개발로 오염관리도 쉽게 할 수 있어 이전에 선호되지 않았던 흰색 소파와 호텔 침구 이미지의 흰색 침구의 인기도 높아졌다. 국내에서 흰색의 주거공간을 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공간이 넓어 보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연출하며 다른 색과 쉽게 조화되어 자신의 개성대로 마음껏 꾸밀 수 있어서일 것이다.

흰색은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모아진 모든 색상의 조합으로, 채도가 없는 무채색 중에서도 명도가 가장 높은 색이다. 하얀 도화지, 하얗게 눈 쌓인 들판이 나타내는 것처럼 흰색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의 색으로, 역사적으로 신성한 종교적 인물, 순결한 신부를 상징하는 색이며, 오염되기 쉬워 관리가 어려운 색으로 부유층과 귀족층의 의복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흰색은 이미 알려진 대로 순수함, 순진함, 신성함, 밝음, 청결한 이미지를 전달하여 종교적, 문화적, 계급에서 상징성과 의미의 표시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의복은 개인이 직접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부, 계급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 방식으로, 고대 이집트에는 다양한 색상의 의복이 있었으나 성직자의 신발, 신성한 물건은 흰색이었고 신성한 동물은 흰색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고대 로마시대 겉옷인 토가(Toga)는 복잡한 접는 방식과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착용 방식으로 로마 사회의 질서, 규율, 예의를 상징하는데, 잘 차려입은 토가는 자기통제와 전통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위층 남성은 대부분 흰색의 토가를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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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뮈귤러 2012FW 콜렉션 〈출처: runway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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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복식의 흰색 러프(1960). <출처: refashioningrenaissance.eu>

이후 16, 17세기 더블릿(doublet; 몸에 딱 맞는 남성 재킷)이나 가운의 네크라인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로 세탁할 수 있도록 교체 가능한 주름진 프릴의 옷깃 장식단인 러프(ruff)는 흰색이 다수 사용되었고, 그 형태는 뻣뻣하여 목을 꼿꼿하게 세운 자세를 강요하여 그 비실용성으로 인해 상류층의 부와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한 색상은 하나 이상, 몇 가지의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흰색은 시대적 흐름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면적 의미를 나타낸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흰색은 종교적 의미와 연관되어 순결과 헌신의 의미로 성직자는 흰색 예복을 입으며,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흰색은 죽음을 애도하는 색이며 특별한 행사와 형식에서 예를 갖춰 입는 의복의 색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신성함과 순결함의 상징적 색인 흰색은 정치문화적 의미를 담기도 담기도 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젊음과 미니멀리즘의 색이면서 미래지향적인 퓨처리즘과 아방가르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색이 되었다.

19세기 초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style)의 영향으로 여성의 드레스는 하늘하늘한 원단으로 만든 높은 허리 라인의 엠파이어(empire) 실루엣이 특징이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의 유럽 사회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그 시대 건축의 이오니아식 기둥과 대리석 조각상을 모방한 패션이 탄생하였고, 이는 섬세한 세로의 긴 주름이 잡힌 흰색의 얇은 머슬린 드레스로 완성되었다.

20세기 중후반 현대 패션에서 흰색은 큰 유행의 각 단계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되었다. 1955년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기구 바람에 휘날리던 메릴린 먼로의 상징적인 흰색 드레스는 순수함과 화려함, 관능미를 복합적으로 나타냈고, 1960년대 미니멀(minimal) 미학이 대두되었을 당시에는 단순한 실루엣과 기하학적인 커팅의 흰색 미니 스커트와 원피스는 젊음과 미니멀리즘을 표현하였다. 또한 1970년대 자유분방한 히피 패션이 부상하면서 흰색 레이스와 크로셰, 하늘하늘한 면직물로 만든 보헤미안 셔츠와 드레스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의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이후 1980년대 맥시멀리즘 패션을 지나 1990년대 중후반 단순한 실루엣과 장식이 절제된 미니멀리즘 패션의 유행으로 흰색 등 무채색의 직선적 실루엣의 룩이 대두되어 캘빈 클라인, 질 샌더와 같은 브랜드의 인기를 상승시켰다. 그리고 90년대 말에 이어 지금까지 미래주의 스타일의 패션에서 흰색은 신비롭고 다소 몽환적이며 쉽게 닿지 않을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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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이와 같이 흰색의 패션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그 가치와 의미를 반영하여 진화해왔고 현대 패션에서 깨끗한 이미지를 넘어 현대적 세련미와 우아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색으로 가장 중요한 색 중 하나가 되었다. 색상이 없지만 오히려 더욱 강렬하며 다른 색과 대비하여 옆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는 흰색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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