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윤동주와 낙타바늘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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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6 08:16  |  수정 2024-02-16 08:17  |  발행일 2024-02-1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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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2017년 2월16일 네덜란드 작가 딕 부르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날마다 파란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하얀 토끼 '미피'의 아버지이다. 1955년에 첫 그림책이 나왔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선물한 곰 인형을 좋아하는 미피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45년 2월16일 '서시'의 시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났다. '서시' 외에 '별 헤는 밤' '자화상' 등도 사람의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명시로 평가받는다. '쉽게 쓰여진 시'에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중략)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늙은 교수'? 늙은 교수라는 풍자적 표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언행을 일삼는 교육자로부터 졸업장을 받아야 하는 청년 학도의 비애가 담겨 있다. 특히 윤동주의 시대는 일본제국주의와 그를 추종하는 반민족행위자들이 득세하는 때였으니 그 망극함은 더할 나위 없이 애통했으리라.

미피와 그의 친구들은 "우리는 학교에서 재미있고 신기한 것을 배우죠. 여러분은 무엇을 배우나요?"라고 묻는다. 윤동주와 동문수학했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자랑하는 어떤 '늙은 교수'는 종종 특정 정치세력을 찬양하고 그 반대편을 공격하는 내용을 신문에 기고하거나 방송에서 발언해 세인의 주목을 끈다. 미피와 다른 뜻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 안팎에서 '재미있고 신기한' 여러 가지를 배우는 셈이다.

만주 룽징 명동촌 '윤동주 생가' 외벽에 "청소 당번 문익환, 지각생 윤동주, 떠드는 학생 송몽규"라 적힌 작은 칠판이 걸려 있다. 그 칠판에는 세 사람이 함께 '조선족 최초의 명동 소학교'를 다녔다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독립지사 송몽규는 1945년 3월7일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보다 불과 19일 뒤의 순국이었다. 그 칠판에 '늙은 교수'는 왜 못 올랐나를 두고 억측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윤동주의 명동소학교 동기동창이 아니라 숭실중 같은 반 급우이다.

윤동주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자신이 얻은 열매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쉽게 챙겨진 것이다 싶으면 종교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이슬람교는 수입의 일정 부분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놓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교리는 '한국에서 이슬람교도가 증가하기는 어렵겠다' 싶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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