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의대 입학정원 확대, 공익성에 주목해야

  •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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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0 07:00  |  수정 2024-02-20 07:02  |  발행일 2024-02-2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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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프랑스에서 ENA(국립행정학교)라는 그랑제콜 동문들인 '에나르끄(Enarque)'는 엘리트 과정을 밟고 정부의 간부급 관료로 채용된다. 이들이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재수와 삼수를 하는 학생들도 많다. 우리나라 대학입시에서 수재들은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N수를 한다. 세계적으로 의과대학이 선망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처럼 심각하게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경우는 없다. 첨단과학기술 경쟁의 시대를 맞아, 국가 미래를 위해서 수재들이 의과대학으로만 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우수한 인재들 다수가 의사가 되려고 할까? 의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의사면허라는 직업적 안정성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OECD 가입국 중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같은 유럽 선진국의 의사보다 고수입자에 해당한다. 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의사 수입에서도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4.5~7.0배로 OECD 가입국 평균의 2배 수준이다. 그런데 의사 수를 보면 2021년 기준 OECD 가입국의 평균 의사 수는 1천명당 3.7명임에 반해, 국내 임상 의사 수는 1천명당 2.6명으로 30개 OECD 국가 중 둘째로 적다. 이 중 한의사를 제외하면 1천명당 2.2명으로 가장 적다.

의사들의 고수입과 직업적 안정성 이면에는 분명 의사 부족으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어촌지역을 포함 '의료사막지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지방 병원에서는 연봉 4억원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도 있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은 20년 가까이 3058명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5학년부터 2천명 증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의대 정원은 지금 2천명씩 확대해도 OECD 가입국 평균 의사 수에 접근하려면 산술적으로만 30년이 지나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의사단체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국가가 의사들에게 행한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서 '의사란 직업은 사적 영역이 지배하고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순수 민간영역이고, 자신들의 주체적 판단으로 수련 과정 이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인격의 주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의료인에게 국가가 면허를 주고, 면허가 없는 사람의 의료행위를 막는 것을 의료법이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 의료인이라는 직업은 분명 공익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의과대학 개설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료인이라는 직업은 결코 순수 민간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의료인들이 수련 과정을 집단이탈하는 것은 파업의 다른 형태이며, 이를 막는 것은 의료인의 자유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자유권 제한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37조에 의하면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

법적 논리를 떠나서도 시민들의 눈에 과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진 부족 해결과 '의료사막지대'의 해소는 우리 사회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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