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남 곡성 섬진강 침실습지, 물안개·일출·동악산 노을…침실습지 10경 황홀하구나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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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3 08:15  |  수정 2024-02-23 08:16  |  발행일 2024-02-23 제15면
곡성천·오곡천·고달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곳 형성
국가보호습지…수달·삵·남생이 등 665종 생물 서식
고달리~오지리 연결하는 철제 '퐁퐁다리' 최고 인기
전망대·생태놀이공간 등 갖춘 수변공원 조만간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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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길이 오지리 제방에서 곡성천을 건너 곡성읍 신리로 이어진다. 버드나무 줄기가 제법 윤기를 띠기 시작했고 침실습지 전역에 푸릇한 기운이 퍼져 있다.

가자 나의 침실로, 가자. 상화의 시를 중얼대며 침실로 간다.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그러나 설마 그 침실이 이 침실이겠어? 하는 생각을 한다. 곡성읍으로 향하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고 한산한 섬진강 기차마을을 지나 오곡면 오지마을의 흙돌담 길 따라 강변으로 간다. 기차마을의 예쁜 기차가 눈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굴다리 지나 제방 아래 주차장이 넓다. 설마 이 침실이 그 침실이겠어? 잠길 침(沈)에 집 실(室)이면 딱 맞춤이겠네. 제방으로 오른다. 섬진강이다. 습지다. 침실습지다. 침실(寢室). 세상에, 그 침실이 맞다.

◆침실습지

곡성읍 곡성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오곡면 오곡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강 건너 고달면 고달천이 또 그렇게 섬진강이 된다. 세 개의 천은 어찌 예서 만나기로 했을까. 침실습지는 그들이 한데 만나는 길목에 넓게 형성된 하천습지다. 면적은 203만㎡(약 61만5천평)로 남원의 요천, 수지천과 합류하는 곳부터 오지리 끝자락까지 엄청난 규모로 펼쳐져 있다.

침실은 오지리 남쪽의 침곡(寢谷)에서 온 이름이다. 옛날 유씨(柳氏) 선산에 묘를 쓰던 중 침혈(寢穴)의 명당이 나타나 '침실'이라 했고 후에 침곡이라 개칭했다고 한다. 침실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는 명당'이라는 뜻이다. 옛 이름이 오늘에 이르러 뜻대로 안착한 듯하다. 데크 길이 오지리 제방에서 곡성천을 건너 곡성읍 신리로 이어진다. 버드나무 줄기가 제법 윤기를 띠기 시작했고 주변 습지에는 푸릇한 기운이 퍼져 있다. 저 길을 걷고자 했건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며칠 지난하게 내린 비 때문일 것이다.

강폭이 제법 넓다. 섬진강은 원래 물이 많은 강이었다. 본래 이름이 '모래내' 또는 '다사강'이었을 만큼 모래밭도 넓었다. 섬진강댐과 동화댐 등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혔다. 저장된 물은 김제평야의 농업용수나 섬진강 주변지역의 상수도 용수로 쓰이면서 하천을 유지하는 강의 수량은 줄었다. 강물이 줄어들다 보니 강변은 이렇게 습지가 되었다. 지금 침실습지는 국가보호습지다. 가끔씩은 노루도 뛰어다니고 버드나무와 갈대 무성한 강변 초원에는 수달과 삵, 남생이 같은 귀한 야생동물이 산다. 이 외에도 흰꼬리수리를 비롯해 새매, 큰말똥가리 등 665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마을 사람들이 무시로 다니는 동네 습지가 보호종으로 지정된 야생동물의 터전이다. 국내 하천습지 중 가장 많은 한국 고유어종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침실습지를 '섬진강의 무릉도원'이라 부른다. 침실습지는 빼어난 풍경과 생물 다양성을 인정받아 2016년 11월, 강 중류 하도습지로는 유일하게 환경부로부터 22번째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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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리와 오지리를 연결하는 퐁퐁다리. 상판에 구멍이 퐁퐁 나 있어 '퐁퐁다리'다.

◆침실습지 10경, 상선약수 퐁퐁다리

무지개를 건넌다. 오곡천 습지를 가로지르는 침실목교다. 훌쩍 높지만 오곡천 하상의 모래가 일렁일렁 환하다. 섬진강 건너 동쪽은 고달면 고달리다. 고달리와 오지리를 연결하는 납작한 다리가 놓여 있다. 침실습지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퐁퐁다리'다. 100m 정도 되는 철제 다리로 상판에 구멍이 퐁퐁 나 있어 강물이 불면 구멍을 통해 물이 퐁퐁 올라온다. 홍수가 져서 물이 세차게 흘러도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다리에 구멍을 퐁퐁 뚫은 부력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고달리 잠수교'다. 고달리 주민들이 빠르게 읍내로 나갈 수 있는 통로로 사람도 다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다닌다.

침실습지에는 10경이 있다. 1경은 '침실습지 일출', 3경은 침실습지를 옆에 끼고 둑방길을 걷는 '묵언명상 강변길', 4경은 '바람공장 자전거길'로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의 일부분이다. 5경은 '호락산 흰꼬리수리길'로 침실습지 동쪽에 위치한 호락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6경은 '동산정 팽나무'로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 7경은 '황홀채색 동악산 노을'로 곡성읍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동악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다.

8경은 '청강속살 달뿌리풀 군락'으로 침실습지의 급류에도 목숨 줄 질기게 달뿌리풀이 군락으로 피어나는 모습이다. 9경은 '생명보고 황새밥상'이다. 과거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밭과 버드나무 군락을 일컫는 말로 세월의 흐름에 모래는 하류로 많이 흘러가 지금은 하동을 지나는 섬진강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0경은 '침실습지 상고대'로 쉽게 관찰되지는 않는다. 한겨울 일교차가 심한 날,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고 때마침 지나가는 동장군이 온도를 영하 이하로 빠르게 떨어뜨리는 순간, 안개 속 작은 물방울이 버드나무 군락에 그대로 얼어붙는다.

침실습지 2경이 '상선약수 퐁퐁다리'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최상의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아니한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는 의미다. 퐁퐁다리는 '물멍'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아예 드러누워 물소리와 함께 흘러도 좋겠다. 생각만 해도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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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나무' 전망대. 주변으로 방문자 센터, 체험 및 관찰습지, 탐조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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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습지 수변공원에 자리한 '연하원'. 안개와 노을의 정원이다.

◆안개와 노을의 정원, 연하원

퐁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제방 이편에 둥그런 새집 하나 앉힌 전망대가 있다. '생명의 나무'라는 전망대다. 주변으로 연못과 정자 등이 보인다. 침실습지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중이라 한다. 완공은 2022년 혹은 2023년 이랬는데 이제 곧 개장할 것 같은 태세다. 전망대를 비롯해 방문자 센터, 체험 및 관찰습지, 탐조대, 생태 놀이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숲과 들, 습지, 화원 등 전통 경관을 극대화한 산책로도 만들고 계절 별로 다양한 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수련지와 창포원도 만들어진다. 침실습지 수변공원의 테마는 연하일휘(煙霞日輝)다. 안개와 노을과 햇살이 빛난다는 뜻으로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천연의 경관에 대한 감탄의 말이다. '연하원'이라는 이름이 관목으로 조각되어 있다. 안개와 노을의 정원이다.

물안개는 4월에서 6월 사이 또는 9월과 11월 사이 일출을 전후해 많이 피어오른다고 한다. 오는 내내 지리산마저 지워버린 비구름을 보았기에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있었지만 초봄의 한낮에 물안개를 볼 수는 없었다. 침실습지는 2021~2022 한국관광공사가 봄 시즌 안심관광지로 선정한 24선 중 한 곳이다. 연두로 빛나는 완연한 봄날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봄날의 이른 아침에, 침실로 오시라.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방향으로 간다. 남원 분기점에서 순천완주 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가다 서남원IC로 나간다. 순천방향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곡성읍으로 나가 섬진강 기차마을 쪽으로 간다. 기차마을 앞을 지나 조금 가면 오곡면사무소가 나오는데 조금 더 직진하면 왼편에 GS25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을 끼고 좌회전해 오지8길 따라 직진, 오동교 앞에서 좌회전해 700m 정도 가면 침실습지 주차장이 위치한다. 주차는 무료다. 곡성, 오곡, 고달천이 합해진 섬진강은 침곡리에서 침곡천을 만나 청둥오리 모가지 빛깔의 압록으로, 또 구례로, 하동으로 간다. 그 길 따라 내리 걸어도 좋겠다. 침곡리 맞은편은 고달면 호곡리다. 호곡나루에 동동 뜬 줄 배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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