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눈길을 외면하지 마라

  •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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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6 07:06  |  수정 2024-02-26 07:30  |  발행일 2024-02-26 제22면
"절박한 요청을 거절 못해…
스카우트연맹총재로 선출
도와달라는 이웃 외면마라
관운이 열리는 행운의 열쇠
그들이 건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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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관운이 좋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지난 22일 국내 최대 청소년단체인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총재가 되었다. 변호사로서 대한변협회장이 되고 보이스카우트 대원이었던 소년이 총재가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절박하게 요청하는 것을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변호사 단체는 사법시험 존폐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었다. 사시 출신 젊은 변호사 일부가 "로스쿨 출신은 바퀴벌레"를 줄여 "로퀴"라고 비난하였다. 힘도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로스쿨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힘껏 도왔다.

그러다가 예정에 없던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당시 로스쿨 출신이 사시 출신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변을 일으키며 압승하였다. 절박했던 로스쿨 출신의 결집력과 사시 출신 변호사들까지 대거 지지해준 덕분이다. 주변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한변협회장까지 직행하게 되었다. 유사 직역이 변호사 업무를 잠식하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나서주어야 한다는 긴박한 요청 때문이다.

변협회장선거는 단독 후보였다. 직선제 도입 이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서울회장 출신이고 전국적으로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기탁금 1억원을 날리면서 출마할 후보가 없었다. 당연히 무투표로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공직선거법상 단독후보인 경우, 국회의원은 당연히 무투표 당선이지만 대통령은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 득표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자존심 때문인지 변협회장 단독후보도 대통령처럼 전 회원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야 단독후보일 경우도 없고 투표율도 높지만 변협 선거는 정반대이다. 다행히 선거가 무산되면 안 된다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80%에 이르는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마냥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단독후보니까 지지자만 투표할 테니 100% 찬성일 텐데 뜻밖에 20%의 반대표가 있었다. 당시 집행부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기념품을 제공하겠다고 했더니 투표하지 말고 선거를 무산시켜 곤란하게 하자던 반대파들 중 상당수가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

스카우트연맹 총재 역시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경선을 거쳤지만 총회에 단독으로 추천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절박함의 정도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스카우트는 전 세계 172개국에서 1억명의 청소년들이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의 스카우트 활동은 위기이다. 방과 후 학원으로 직행하는 입시지옥에서 스카우트 활동은 꿈꾸기 어렵다. 인구 절벽 속에서 잠재적 회원인 청소년 인구의 급격한 감소도 심각한 문제이다.

난국을 타개해 보려고 야심 차게 준비한 '새만금세계잼버리'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기도 전에 뭇매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총재로 추대하겠다니 계속 고사하였다. 그러나 절박한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은 오직 스카우트라는 명예와 자부심을 가지고 무보수로 봉사하는 지도자들의 열정과 헌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입시학원의 콘크리트 강의실이 아닌 대자연 속에서 도전과 개척의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권하건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도와달라는 눈길을 외면하지 마라. 관운이 열리는 행운의 열쇠를 필자처럼 그들이 건네줄지 모른다.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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