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남 남원 수지면 내호곡마을 몽심재 …호랑이 기운 품은 고택…살금살금 발가락 걸음이 저절로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4-03-01 08:32  |  수정 2024-04-12 07:49  |  발행일 2024-03-01 제15면

1
남원 수지면 내호곡 죽산박씨 집성촌의 몽심재. '몽심'은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에서 유래한다. 도연명을 꿈꾸는 '몽'과 백이의 마음 '심'을 합해 '몽심'이다.


남원 지리산 서쪽에 호음실(虎音室)이란 마을이 있다. '호음'은 호랑이 울음소리라는 뜻이다. 보통 홈-실이라 부른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호랑이 머리 모양의 호두산(虎頭山)에 호랑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옛날에는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많았는데 영조 때 전라감사 이서구가 호두산을 견두산(犬頭山)으로 바꾸자 호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 이름도 호곡리(虎谷里)에서 호곡리(好谷里)가 되었다. 호곡리의 내호곡마을은 죽산박씨(竹山朴氏) 집성촌이다. 고려 말의 충신 송암(松菴) 박문수(朴門壽)는 두문동으로 들어가며 가족들을 고향인 남원 초리로 내려보냈다. 300여 년간 초리에 살던 죽산박씨가 옆 마을인 내호곡으로 들어온 것은 1700년대 초반이다.

지리산 서쪽 호두산이 두른 마을에
영남 선비들 거쳐가던 고택 사랑채
집터는 누워있는 호랑이 머리 자리



2

◆내호곡마을 몽심재

마을 입구에서 마을의 내력을 읽고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 회관처럼 생긴 하얀 건물에 '수지도서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을이장이 기부 받은 책으로 만든 도서관이란다. 흘끔 들여다보니 책이 많다. 마을 가까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이정표를 보았으니 도서관 이용자도 꽤 될 듯하다. 마을 광장에 죽산박씨 충현공파의 사적비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그 뒤로 경로당이 조용하다. 어디선가 나타난 할머니 한 분이 씩씩하게 걸어오시더니 도서관 옆길로 사라지신다. 쪼르르 따라간 자리에 여성 경로당이 있다. 영인당 현판이 걸린 여성 경로당 안에서 음악소리 들린다. 이건 분명 체조용 선율이렷다. 생각해보니 뚝 떨어져 마주 선 두 개의 경로당이 별스럽지 않다.

텅 빈 듯 고요한 안길을 따라 들어간다. '남원의 숨은 보석 몽심재(夢心齋)'라는 안내판을 본다. 돌담 너머로 상체를 드러낸 꽃나무들이 꽃봉오리를 잔뜩 매달고 있다. 봄비가 지나가면 꽃이 피겠지. 대숲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 앞에 고택의 삼문이 단정하다. 이 집은 18세기 후반에 죽산박씨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이 지은 고택으로 몽심재는 사랑채의 이름이다. '몽심'은 박동식의 선조인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에서 유래한다.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꿈꾸며 잠자고(隔洞柳眠元亮夢)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구나(登山薇吐伯夷心)' 도연명을 꿈꾸는 '몽'과 백이의 마음 '심'을 합해 '몽심'이다.

어쩐지 살금살금 걷게 된다. 경사진 땅의 높은 자리에 몽심재가 자리한다. 축대까지 높아 건물은 더욱 우뚝하다. 누마루가 있는 정면 5칸 집, 크다. 사랑채 뒤편의 안패는 더욱 높다. 'ㄷ'자형에 양쪽 누마루 방이 다락처럼 설치되어 더욱 높아 보인다. 누마루 방 창문 앞에 덧댄 난간이 전망대처럼 느껴진다. 몽심재는 지리산 만복대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한 견두지맥 기슭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다. 산자락에 둘러싸인 비교적 폐쇄적인 땅이지만 경사진 터를 그대로 이용해 문간채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갈수록 건물을 시원하게 높여 답답함이 없다. 집 동쪽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죽산박씨 종택과 사당이 자리하는데 역시 터생김 그대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종가 대문에는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집안임을 나타내는 삼강문(三綱門)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3
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 주일암.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위).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주일암, 요요정, 천운담

몽심재에서 뒤돌아보면 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가 보이다. 바위에 주일암(主一巖)이라 새겨져 있다. '주일무적' 즉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잡념을 떨친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다. '존심대(存心臺)' '청와(淸窩)' 등의 각자도 보인다.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 주일암과 문간채 사이에는 200년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호족시'라 불린다. 드러난 뿌리 모양이 호랑이 발을 닮았단다. 바위에 모인 기운 덕에 바위 앞 문간채에서 잠을 자면 큰 인물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달을 앞두고 묵으러 오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이 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문간채의 대청마루와 그 앞의 연지다. 대청마루는 요요정(樂樂亭)이라 부른다. 난간을 두르고 앞쪽에 낮은 연지를 둔 누마루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연지는 천운담이다. 연지 중심에 바위섬이 있고 디딤돌 4개가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다는데 봄비 덕에 디딤돌은 보이지 않는다. 빗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내려 연지를 이루고 담장 아래 배출구를 통하여 집 밖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운 여름에는 연지의 수면에 머문 시원한 공기가 사랑채의 대청마루로 시원하게 불어 올라간다고 한다. 연못가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절이 그려진다.

고려 말 충신 박문수 후손이 지어
후한 대접으로 손님들 끊이지 않아
전란땐 온 마을 함께 건물 지켜내



4-2
문간채를 가리고 엎드린 커다란 바위, 주일암. 집터가 누워있는 호랑이의 머리 자리인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위). 연못을 가진 즐겁고 즐거운 정자, 요요정. 하인들의 공간에 마련된 누마루는 처음 본다. 집주인의 배려와 너그러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몽심재의 주인들

마을 사람들은 박동식을 박진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심 좋고 과객 대접이 후하기로 소문난 박진사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구례, 순천 쪽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선비들 또는 함양 쪽에서 넘어오는 영남의 선비들에게 몽심재는 늘 거쳐 가는 사랑채였다고 한다. 또한 몽심재의 쌀 창고는 늘 열려 있어서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가져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몽심재의 두 번째 주인은 박주현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내다 러일전쟁 이후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 1910년 경술년 국권피탈 직전 일제는 합방의 정지작업으로 각 지역에 민회(民會)를 만들었다. 일제는 남원의 유력인사인 박주현을 회장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박주현은 심한 고문을 받고 몇 달 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몽심재의 세 번째 주인은 박주현의 장남인 박해창이다. 그는 홍문관 시강 벼슬을 지냈으며 마을에서는 비랑공이라 불렀다. 고조, 증조 때부터 근검절약하여 모은 재산이 그에 이르러 만석이 되었으며, 남원의 3대 만석꾼에 꼽힌다. 그의 땅은 구례 산동까지 뻗어 있었고 추수기에 쌀을 저장하는 창고가 구례의 이평과 산동, 남원 읍내 세 군데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소작인들을 후하게 대하였고 1923년에는 사재를 털어 초등학교를 세웠다. 지금도 건재한 수지 초등학교다. 그가 죽자 영호남의 과객들이 여러 곳에 자발적으로 유혜비(遺惠碑)를 세워 그를 기렸다고 한다. 남원은 동학농민전쟁과 6·25전쟁 때 아주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몽심재가 불타지 않은 것은 온 마을이 함께 지켰기 때문이라 한다. 문중에서 최근 몽심재를 원불교 교단에 기증했고 현재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집안에서 사람소리 들린다. 엄지발가락으로 살금살금 걸었던 것은 집의 기운 때문이지 사람소리 때문이 아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광주고속도로 남원IC에서 내려 직진, 요천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광한루원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한다. 노암동사거리에서 좌회전, 노암사거리회전교차로에서 10시 방향 구례, 수지 방면으로 나가 약 3㎞ 직진, 동학농민운동유적지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수지, 고달 방면으로 우회전해 간다. 6㎞ 정도 직진하면 호곡리다. 원불교 수지 교당을 지나면 몽심재 이정표가 있다. 내호곡2길 따라 들어가면 된다. 몽심재 솟을대문 앞에 너른 주차공간과 몽심정 쉼터, 간이 화장실이 있다.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