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사무실 이웃 까치

  •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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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4 06:53  |  수정 2024-04-04 06:55  |  발행일 2024-04-04 제22면
도심 건물외벽 간판 사이에
까치부부가 새 집을 지었다
나뭇가지로만 지은게 신기
이 무렵에 알을 낳는다는데
아기까치 마주할 행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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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몇 주 전 일이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건물 남쪽 끝 방을 쓰는 동료가 보여줄 게 있다며 자기 방으로 와 보란다. 동료는 햇살이 너무 잘 들어 컴퓨터 화면이 잘 안 보인다고 내려둔 창문 롤스크린 줄을 마치 비밀 문을 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당겼다. 창문 밖으로 나뭇가지가 삐죽삐죽 뻗쳐 있는 게 보였다. 롤스크린을 다 올리자 5층짜리 건물 4층 높이에 수직으로 걸린 간판 옆으로 수많은 나뭇가지가 얼키설키 그러나 탄탄하게 엮인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엔 감이 오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목을 빼고 보면 좀 더 잘 보일 것 같은데, 이 건물 창문은 환기를 위해 15도 정도만 열리게 돼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한참을 보는데 마침 까치 한 마리가 간판 뒤쪽으로 살짝 넘어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머, 그럼 저건, 까치집? (나중에 알고 보니 까치집 입구가 간판 뒤쪽에 있었다)

세상에나. 건물 외벽과 간판 사이 공간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동료 방에서는 까치집 한쪽 면만 보이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면이 다 보일까 해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봤는데 옥상 벽이 높아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안전을 위해서는 그 정도 높이는 필수겠지). 건물 밖으로 나가 이쪽저쪽으로 둘러봤지만 까치집이 높아 잘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평소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아무런 접착제도 없이 벽과 간판 사이 빈 공간에 나뭇가지들만으로 어떻게 저리 안정된 요람을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해서 까치에 '급관심'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 시간만 나면 까치와 까치집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헌신적인 다큐 감독들이 찍은 영상들은 나의 궁금증을 기대 이상으로 해소해 주었다. 까치는 집을 짓는 데 약 1천개 정도의 나뭇가지를 쓴다고 한다. 인간처럼 운반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한 번에 하나씩 적어도 천 번 이상은 오간다는 얘기다. 까치집 입구는 까치 한 마리가 날개를 완전히 접고 몸을 홀쭉하게 만든 상태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다. 입구를 좀 넓게 만들면 드나들기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하 다른 침입자를 막기 위한 방책임을 금세 깨닫는다. 까치집 외관은 나뭇가지만으로 엮여 있어 거칠지만, 안쪽은 진흙과 보드라운 풀을 짓이겨 안락하고 포근하게 만들어 집이 2중 구조다. 동물 중에서 탁월한 건축가 수준이라고 한다. 까치는 1~2월 겨울에 집을 짓고, 봄에 알을 낳고 부화한 뒤 새끼가 둥지를 떠나면 그 집을 다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알을 낳아 부화하는데 18일,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데 22~27일, 도합 40~50일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집을 짓는다.

그동안 동영상 등으로 쌓은 지식에 의하면 까치는 지금 이 무렵 알을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동료는 아직 새끼 까치 소리는 안 들리지만 까치 부부가 둥지에 더 자주 드나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창 부화 중일까. 설렌다. 새끼 까치 소리를 듣는 날을, 마침내 둥지를 떠나는 아기 까치들을 마주할 행운이 올까.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 같지만, 까치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저렇게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키우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니 자연과 생명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만 하면 평소 잊고 있던 경이로움을 안겨줄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새순이 돋고 꽃이 피면 매번 새삼스러운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가. 올해는 까치의 이웃이 되기까지 했으니 이 봄에 뭘 더 바라랴 싶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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