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창] 100년 전 일본의 폭망사, 한국에서 재현되다

  •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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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24  |  수정 2024-05-24 07:02  |  발행일 2024-05-24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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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20세기 초,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미국이 제동을 걸자 일본은 곧바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국력에서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초강대국에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동네 꼬마가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에게 대드는 꼴인데 왜 이런 무모한 도발을 했을까.

미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는 정확한 보고서가 제출되었으나, 신이 보호하는 대일본제국에 패배는 없다며 일본 정부는 승리를 확신했다. 국가적 위기마다 전쟁이란 강경책으로 정면 돌파했던 경험과 전쟁에 호의적인 국민 여론으로 거칠 것 없었다. 미국에 이길 수 없다는 합리적인 주장과 평화 여론은 짓밟혀 버렸다.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wishful thinking'은 비참한 패배와 굴욕으로 막을 내렸다. 식민지를 모조리 잃었으며 국민들은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7세기 후반, 일왕 오오아마(大海人, 天武天皇)가 국호를 일본으로 정하고 스스로를 천황으로 높인 후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신성불가침이었던 천황은 인간 선언을 하고 푸른 눈의 코쟁이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오판에 따른 대가는 너무나 처참했다.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진리인지, 21세기 대한민국 의료계에 유사한 일이 재현된다. 여소야대에 시달리던 정부는 위기마다 대화와 타협보다 정면 강행 돌파를 선택한다. 건설노조 진압에서 강경책으로 재미를 본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회복 방법으로 의대 증원을 선택한다.

필수·지방 의료 공백의 원인은 의사 부족이 아니라, 의료 인력 분배 문제임을 의료계에서 수없이 지적하였으나 깡그리 무시되었다. 총선 승리에 목말랐던 정부에 80%가 넘는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자료만을 발췌하여 의사 증원의 근거를 창조해냈다.

이에 반발하여 전공의는 사직하였고 의대생들은 휴학에 돌입했다. 정부는 압수 수색과 면허 정지로 협박하며 뚝심 있게(?) 의대 증원을 강행했다. 비대면 진료 허용, PA간호사, 군의관 파견 등 실효성 없는 대책들은 어이없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차관이 '대한민국에 의사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전세기를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실어 날라 치료받게 하겠다'는 망언을 해대더니, 외국 의사 진료 허용으로 헛발질의 정점을 찍는다.

대한민국 의료계는 그야말로 붕괴되어 가고 있다. 대학병원은 적자에 시달리며 은행 대출로 연명하고, 병원 직원들은 대량해고의 위기에 처했다. 병원과 관계된 의료자재 회사들과 주변의 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어 신음하고 있고, 중증 환자들은 언제 대학병원 진료가 중단될지 걱정이 태산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 부재, 반대여론 무시와 인기에 영합한 무모한 강행, 그리고 파국, 일본의 폭망사와 유사하지 않은가?

의대 증원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며 '의료 개혁'이라는 정부에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대적 소명'이며 2천명 증원은 어디에 근거하여 나왔는가? 폭망한 이웃 나라의 전철을 따라가는 암울한 현실에 답답한 한숨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전세기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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