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포항 장기면 선돌곶, 일망무제 동해·우람한 기암괴석…여기가 선계인가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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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4  |  수정 2024-06-14 09:23  |  발행일 2024-06-1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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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곶 전망대. 오랫동안 군 작전지역으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가 근래에 개방되었다. 파란 데크 길은 곶의 암석지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전진한다.

도로가 절벽 아래로,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바위들과 헤어졌는지 모른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골몰하며 이리저리 기웃댈 때면 어김없이 보였던 철조망과 금지의 표식들. 그러면 아주 쉽게 고개 돌려 마음을 지우고 벼랑의 고개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언제나 산을 등지고 바다에 임한 좁은 땅이었고 곶과 곶에 사로잡혀 바다로의 전진만 배운 듯 발이 젖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두원리 지나 벼랑 진 고개를 오르며 시선을 사로잡는 암석의 바다와 철조망 너머 웅크린 건물을 본다. 늘 그랬듯 쉽게 고개 돌려 마음을 지우고 고갯마루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끼익, 바다가 훤한 길가에 멈추어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저기에 절벽 아래로 다가가는 길이 있다.

오랫동안 軍작전구역 속해 근래 개방
북쪽 계원리·남쪽 두원리 한눈에 조망
바닷가 우뚝 솟은 선돌 '모아이' 닮아
바위섬 소봉대 앞 이언적 시비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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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전망대에서 본 선돌은 바다를 향해 선 모아이 같다.

◆ 선돌곶 전망대

해변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돋우어진 단구 면에 주차장이 있다.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차가 여럿이다. 창이 어두운 자동차에서 음악소리 들린다. 절벽은 바다로 돌출된 곶이다. 야자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간다. 데크 길 입구에 세 개의 안내판이 조르르 서 있다. 이곳은 군 경계감시 작전구역이니 조성된 데크만 이용해라, 몇 시까지만 출입해라, 이쪽 방향으로는 촬영하지 마라, 높은 파도 조심해라 등등의 주의사항을 찬찬히 읽는다. 그러나 정신은 데크 아래 주름진 그늘에 누운 사람들에게 가 있다. 파란 파라솔을 펼친 연인은 허기를 불러일으키는 냄새를 풍긴다. 여름, 바다, 휴식, 잠, 최선의 나태함 따위를 생각하며 떠나 있으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은 '선돌곶 전망대'라고 한다. 포항 시 장기면 두원리와 계원리 사이의 곶으로 해파랑길 12코스에 속해 있다. 오랫동안 군 작전지역으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가 근래에 개방되었다. 총길이 750㎞의 동해안 해파랑길에서 통제되고 있는 구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하나둘 개방되는 추세다.

파란 데크 길은 곶의 암석지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전진한다. 곶의 등허리에는 솔숲에 감춰진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다.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사람의 목소리가 낮게 들린다. '방풍자생지'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난간 너머로 방풍을 찾으려다 물빛만 본다. 처음 보는 바다, 처음 보는 물빛이다. '해국자생지'라는 안내판을 본다. 데크 길 아래 깊은 암석의 골짜기에 '해국자생지 탐방로'라는 푯말이 툭 떨어진 듯 놓여 있다. '와송자생지'라는 안내판이 이어진다. 가늘게 자라난 와송들이 절벽에 옹기종기 모여 하늘을 붙잡고 있다. 방풍이나 해국, 와송보다 하얗게 피어난 돌가시나무 꽃에 더욱 눈이 간다. 하얀 미소라고 불리는 돌가시나무 꽃의 꽃말은 희망과 평화다.

그리고 저기에 선돌이 있다. 다 깎이고 강한 부분만 남은 채 귓바퀴에 솔가지를 꽂고는 우뚝 서 있다. 바다를 향해 선 모아이 같다. 선돌 아래 낚시꾼을 보니 선돌이 얼마나 우람한지 알겠다. 선돌의 남쪽으로 내려선다. 거친 돌들의 해안이다. 티끌만 한 생명체들이 화르르 거친 돌들 아래로 숨는다. 가까운 바다에는 두 사람이 물질을 하고 먼 바다의 바위섬에는 낚시꾼이 아틀라스처럼 서 있다. 물속에서 까맣게 흔들리는 것은 미역이다. 미끌미끌한 미역을 휘 헤쳐 반들거리는 돌과 어린 고사리처럼 소용돌이 모양을 한 조개를 만져본다. 손이 짜다. 벼랑 아래 몇 송이 피어난 연한 자줏빛의 작은 꽃을 발견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무, 갯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무의 야생종이라고도 하고, 무가 야생으로 탈출한 것이라고도 한다. 너는 어디서 탈출해 여기에 숨었나. 갯무 옆에는 또 몇 송이의 갯까치수염이 하얗게 피어 있다. 갯까치수염의 잎을 보고 해변진주초라 부른다는데 단순한 내 눈은 척박한 바위틈에서 자라난 하얀 꽃이 진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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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은 계원리다. 계원2리의 소봉대와 계원1리의 곶까지 조망된다. 저기 마을 앞 정수리에 솔숲을 얹은 작은 바위섬이 소봉대다.

◆ 남쪽은 두원, 북쪽은 계원

가장 높은 초소 아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오른다. 초소의 밑동을 빙 두른 전망대는 제법 넓다. 남쪽으로 선돌과 두원리의 원하, 적석 지나 경주 연동까지 가늠된다. 시야가 흐리지만 두원리의 좁장한 해변은 확실히 보인다. 북쪽은 계원리다. 계원2리의 소봉대와 계원1리의 곶까지 조망된다. 저기 마을 앞 정수리에 솔숲을 얹은 작은 바위섬이 소봉대(小峰臺)다. 옛날 작은 봉수대가 있었다는 섬이다. 지금 섬은 방파제로 이어져 있고 봉수는 무너져 흔적이 없다.

소봉대에 앞에는 조선 중기의 문인 회재 이언적의 칠언절구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대지 뻗어나 동해에 닿았는데/ 천지 어디에 삼신산이 있느뇨/ 비속한 티끌세상 벗어나려니/ 추풍에 배 띄워 선계를 찾고 싶구나.' 풍광에 반한 많은 문인들이 소봉대를 찾아왔다는데, 그들은 또한 이곳 선돌곶에도 올랐다 전한다. 그들은 저 멀리 계원1리의 곶에도 오르지 않았을까. 저곳에 등대가 있는데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계원리의 곶마다 바위가 많다. 1950년대 계원리는 미역으로 유명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미역바위를 소유하고 있었고 당시 미역바위 1곳에서만 미역 500단을 생산했다고 한다. 미역 1단이면 쌀 1가마니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소중한 미역바위였기에 주인들은 매년 가을마다 미역바위를 정성껏 청소했다. '미역바위 하나와 논 100마지기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1961년에 5·16 군사정변이 있었다. 1962년에는 수산업법이 개정되었다. 개인소유였던 미역바위들은 모두 어촌계에 편입되었다. 열성적이던 미역바위 청소도 시들해지고,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미역 양식이 시작되었다.

미역바위 주인을 곽주라 한다. 곽주가 있던 시절에는 미역바위마다 이름이 있지 않았을까. 이름을 잊었거나, 이름을 빼앗겼거나, 이름을 얻지 못한 바위들이 저 아래서 아우성이다. 저 아우성 가운데 바다는 무시무시하게 아름답고 고적한 계원리 앞바다에는 한 사람이 물질을 한다. 선돌과 일직선인 자리를 얼추 맞추어 서서 몸이 딱 절반으로 나뉘는 만화적인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결정한다. 선돌은 두원리도 아니고 계원리도 아니고 오롯이 바다에 속해 있다고. 회재는 선돌곶에 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올랐다면 말했겠지, 선계가 예구나.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에 내려 구룡포 방향 31번 국도를 타고 간다. 구룡포읍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장기면 계원리 지나 선돌곶이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4번 국도 감포 방향으로 가도 된다. 나정교차로에서 좌회전해 31번 국도를 타고 감포, 구룡포 방향으로 가면 두원리 지나 선돌곶이다. 선돌곶 전망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출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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