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서 ‘노쇼 사기’ 기승…11개월간 90건 신고

  • 오주석
  • |
  • 입력 2025-05-20  |  수정 2025-05-20 08:36  |  발행일 2025-05-20
선거캠프·연예기획사 등 사칭
대리구매 유도 돈 챙겨 잠적도
추적·처벌 어려워 상인들 눈물만
경찰청 이미지.

경찰청 이미지. 영남일보 DB

"○○○○선거캠프입니다. 15개 객실을 3일간 예약할께요." 식당 등에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No Show·예약부도)' 사기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군부대 간부는 물론 교도관·연예기획사·변호사·정당 등 사칭하는 직군도 다양하다. 연기자 빰치는 주도면밀한 수법에 속아 넘어간 소상공인들은 쓰린 가슴을 부어잡고 눈물만 삼키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19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군부대 사칭 노쇼' 사건이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유사 사례가 90여건 접수됐다. 특히 올해 3월부터 피해 신고가 급증하자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 규모가 적어 신고 접수가 안된 사례까지 포함하면 수백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노쇼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식당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을 상대로 "50명분 예약하겠다" "식사를 미리 준비해 달라"는 식으로 주문한 후 연락을 끊는 수법이다. 지난 7일 오후 경주 감포읍 한 횟집은 영화 관계자를 사칭한 사람 때문에 30인분 주문을 받고 130만원어치 음식을 준비했다가 노쇼 피해를 봤다. 피해자 대부분은 공공기관 관계자란 상대의 말만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소상공인의 상실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신뢰를 쌓은 뒤 다른 물품의 대리 구매를 유도한 뒤 돈을 가로채는 유형도 있다. 지난 3월10일 포항교도소 의료과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은 자동심장충격기 세 대를 주문한 뒤 방탄조끼 160벌을 대리 구매해 달라고 요구해 1억50만원을 송금받고 잠적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보이스피싱의 변종 형태로 보고, 피해자의 송금계좌를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행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해외에 거점을 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쇼 사기 조직은 보이스피싱 조직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등 해외에 본거지를 둔 총책, 국내 자금 송출을 담당하는 행동책, 대포통장·연락처를 제공한 불특정 가담자 등으로 구성된다.

더 큰 문제는 실효성 있는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노쇼의 경우 위계(僞計)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물을 수 있으나, 처음부터 고의성을 갖고 예약 후 불참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대리 구매 사기의 경우에는 총책이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추적하는 데만 통상 1년 이상 걸린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기보다 기존 사기 범죄가 고도화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구한의대 신성원 교수(경찰행정학과)는 "대량 주문을 미끼로 피해자의 들뜬 기분을 악용한 고도화한 사기 유형"이라며 "사기를 인지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예방교육과 제도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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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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