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법원 재판과 특검 수사를 받기 시작하며 장외(場外)에서 기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지난주 내란 특검 소환조사 때도 "평양에 무인기 침투를 지시한 게 맞나?" "사후 계엄 선포문에 어느 정도 관여했나?" "국민에게 사과할 생각은 여전히 없나?" 등 잇따른 질문을 받았다. 물론 답변도 사과도 없었다. 그는 그저 못 본 척 못 들은 척, 빳빳이 고개를 치켜든 채 먼 데만 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계엄 선포 후 지금까지 윤 전 대통령은 기자 질문에 대답한 적이 없다. 입을 앙다물고 시선을 딴 데 두는 게 전부였다. 사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6월16일 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재판 휴정 시간,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외치는 걸 듣고 처음으로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나 저 사람들 좀 보게 이 앞을 가로막지 좀 말아주면 안 되겠어요?" 비켜달란 푸념이었다. 국민을 대신해 던지는 기자 질문엔 귀와 입을 꽁꽁 닫다가 극렬 지지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며 제 앞에서 비키라니… 한때나마 나라와 국민의 대표자, 대통령을 한 사람의 언행이 맞는지 기자들은 그냥 실소할 뿐이었다.
# 5년 하나 3년 하나, 그게 그거…
더한 사례는 또 있다. 4월4일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1주일 후, 서초동 집에 돌아온 날 일이다. 한 주민이 위로를 건네자 그는 싱글대며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어 "어차피 뭐 (대통령 자리) 5년 하나, 3년을 하나…"라고 흰소리도 했다. 국민의 엄한 선택을 받아 5년 대통령직에 올랐던 사람이 국가 시스템의 원천부터 파괴하다 중도 파면돼 쫓겨나고도 다 이겼다고 소리치는 정신 상태, 거기다 어디 휴양지 놀러 간 것도 아닌데 '대통령 일 5년이건 3년이건 그게 그거'라는 인식의 천박과 몰염치, 무책임에 되레 듣는 사람이 창피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언론도 그 부분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한 신문은 "12·3 비상계엄 이후 헌재 탄핵 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윤 전 대통령의 '기괴한 현실 인식'에 국민은 이미 이골이 날 지경인데, 파면 후에도 여전한 비현실적 억지 주장을 해 말을 잃게 만든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나라와 국민께 끼친 해악과 고통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사과는커녕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고, '참 기이한 정신 승리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한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정신세계와 언행'은 재판부와 검찰이 그에게 베풀어준 특혜 의혹과도 맞물리며 엄청난 국민 공분을 불렀다.
우선 내란 우두머리이자 헌법 파괴 범죄의 주범 피의자인데도 그는 혼자만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을 받았다. 법원은 피의자 구속에서 기소까지 기간을 통상 '날'로 산정해왔으나 유독 그에게만 '시간'을 적용했다. 검찰총장은 거기 화답하듯 즉시항고 포기 조치로 바로 그를 석방해줬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불안과 도태에 빠트린 내란의 총지휘 감독 우두머리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나랏돈 받는 경호원을 대동하고 동네 상가를 쏘다니며 부정선거 주장 영화 구경까지 하는 여유를 부렸다. 대신 그의 불법 부당한 명령으로 내란에 엮인 공범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힌 채 '오랏줄에 묶여' 재판을 받으러 다니는 부조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연출됐다.
# 갇힌 부하, 활보하는 우두머리
여기까지도 비합리적인데 그는 더 많은 특혜를 요구했다. 막 출범한 특검의 소환에 "(아무도 안 보는) 지하 주차장을 통해 조사실로 가겠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환에 응할 수 없다"라고 튕겼다. "공개 소환은 망신 주기 정치지 수사가 아니"라며 '피의자 인권'을 들먹대는 등 낯 간지러운 언사도 덧붙였다. 오죽하면 특검이 "계엄 피해자는 전 국민이다. 피해자인 국민 알 권리가 피의자의 인권보다 우선하는 것"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개 소환에 응했는데 어찌 혼자만 비공개로 소환조사 받는 특혜를 바라나"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겠는가.
비공개 소환 요구가 안 먹히자 윤 씨 측은 "오전 9시 소환엔 응할 수 없고 10시에는 나갈 수 있겠다"라는 어깃장도 부렸다. 그의 집에서 특검 사무실까지는 차로 4~5분, 걸어서 20분이면 넉넉히 닿는 거리다. 도대체 1시간 차이 빠르거나 늦게 가는 게 무슨 실익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요구였다.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절 출근 시간에 맞춰 가짜 출근 차를 보낸 뒤 자신은 느지감치 다른 차로 출근한 경우가 많았다며 그 습관 탓에 1시간 늦은 출석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폭음으로 술이 덜 깨 정시 출근이 어려운 데다 알코올 중독성 도덕 불감증에 걸렸다는 주장이었다. 어쨌거나 1시간 늦게 가겠다는 요구 덕에 감추려던 '도둑 출근'과 '폭탄주 중독' 의혹까지 스스로 국민에게 까발린 꼴이 됐다.
지난해 계엄 선포 닷새 전, 천주교 사제단 1천466명은 '사람이 어째서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사제들은 그가 '거짓' '폭력' '어둠' '분열'의 사람이고 '사익(私益)의 허수아비'라며 "나머지 임기를 마저 맡겼다가는 사람도 나라도 거덜 나겠기에 더 이상 대통령직 수행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또 그가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놀라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며 더 늦기 전에 퇴진시키자고 촉구했다. 계엄 선포 후 7개월, 그간 윤 전 대통령이 벌인 온갖 거짓말과 너절한 행동을 돌아보면 사제들 지적은 정말 한치의 틀림도 없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족한 어리석고 못난 성정까지 합쳐 그는 5천200만 국민과 일상을 공유해서 절대 안 될 인물로 확실하게 그 값어치가 정해졌다.
# 일상을 공유할 수 없는 인물
'윤석열 등에 의한 내란과 외환 행위 진상규명 조은석 특검' 팀이 수사 개시 18일 만인 6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했다. 두 차례 대면조사를 했으나 온갖 꼬투리를 잡아 수사에 응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사실관계가 명확한 군 투입 국회 봉쇄까지 부인하는 등 증거인멸 우려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재임 중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명패까지 책상 위에 놓고 겉멋을 부린 그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 의원들을 끄집어내라"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이라" 등 자신의 명문 지시까지 '호수 위의 달그림자' 운운하며 발뺌하는 비겁한 언행으로 국가 위계질서를 어지럽혔다. 정말로 국민과 일상을 함께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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