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구읍성 '사직단' 100년만에 위치 확인

  • 입력 2008-07-03 07:12  |  수정 2008-07-03 07:12  |  발행일 2008-07-03 제2면
서구 평리동 7필지…흔적은 없어
"태평성대 기원하던 곳 복원해야"
조선시대 대구읍성
'대구부지'에 나온 대구읍성 사직단 위치(작은 사진). 원내점선은 조선시대 사직단 터로 확인된 대구시 서구 평리동 1327의1 등 7필지.

지난 1세기 동안 베일에 가려진 조선시대 대구읍성의 사직단(社稷壇) 위치가 확인됐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왕이나 고을 수령이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시대적 문화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문화유산 연구단체인 '달구벌 얼 찾는 모임'은 2일 고종 재위시절 고문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적도를 통해 대구읍성 사직단의 옛 터가 현재 평리동 1327의 1, 1339의 1, 1341의 17, 1341의 19, 1342의 18, 1621의 21 등 7필지에 위치한 것을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달성군 현풍면과 경산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현풍사직단'과 수성구 노변동 '경산사직단'은 이미 발견돼 복원됐으나 대구도호부의 사직단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단체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직단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고종 재위시절 작성된 대구읍지(大邱邑誌)에서 "대구부(현 경상감영)에서 서쪽으로 7리 떨어진 평산(坪山)에 (사직단이) 있다. 이곳에 재실을 만들어 승려로 하여금 지키고 보호하게 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1910년 일본이 제작한 대구 지적도를 확인한 결과 당시 서구 평리동 1313일대 998㎡(302평)를 사사지(社寺地·사직단 터의 일본식 표기)로 표기한 것을 확인한 것. 당시 일본도 사직단 터를 종교용지로 표기해 놓았다.

현재 사직지 터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주택지와 신평리 아파트 재건축부지로 나눠져 있다.

'달구벌 얼 찾는 모임'측은 "대구읍성 사직단의 복원을 위해 대구시가 주변 주택가를 매입하거나 재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신평리아파트의 공원을 사직단으로 조성해야 한다"며 "사직단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기념하기 위해 '부산사직야구장'과 '광주사직공원'처럼 동명(사직동), 거리명(사직로), 아파트명 등 주요시설 및 공원명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웅 '달구벌 얼 찾는 모임' 회장은 "대구시는 지난해 수성구 노변동 경산지역 사직단에 대해 9억5천만원을 투입해 복원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평리동 사직단은 명실공히 대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만큼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복원에 대구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대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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