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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혜 교수가 집 앞마당에 있는 바위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개인적 고통을 이 곳에 들어와 모두 치유했다는 그의 표정이 자연의 모습만큼 푸근하고 따뜻해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가톨릭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뒤셀도로프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국내외에서 21번의 개인전과 400여회의 그룹전을 가졌다. 시집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 ‘에로스의 반지’ ‘별의 집’ 등을 펴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CU갤러리 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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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선 백미혜 교수. 박관영기자 |
너무 깊었던 마음의 상처
암이라는 육체적 고통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그 이상으로
자연은 나를 아물게 했다
내 안의 모든 아픔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주목받고 있는 것이 ‘에코 힐링’이다.
‘ecology(자연)’와 ‘healing(치유)’의 합성어인 에코 힐링은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을 의미한다. 맨발로 흙을 밟으면 발바닥에 느껴지는 시원한 촉감과 숲속에서 자연산 산소와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마실때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은 우리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을 통한 치유’인 것이다. 편리함을 좇아 도심으로 향하던 이들이 점점 발길을 전원으로 돌리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서양화가이자 시인인 백미혜 교수(대구가톨릭대)는 2004년 경산시 와촌면 음양리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그의 집은 대구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내비게이션으로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취재를 나설 때 백 교수가 “집 가까이에 있는 도로가 내비게이션에 잡히질 않아 오시는 분마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 가까이 오면 전화를 달라. 내가 직접 나가겠다”고 친절을 베푼 이유가 이해 갔다.
이 곳에 들어올 당시 백 교수는 개인적으로 아픔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세상과의 여러 인연을 끊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은둔하는 마음으로 찾아든 곳이 이 집이다.
“30년 넘게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다가 어머니와 단 둘이 이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주위에 집이 몇채 있지만 그 때는 가까이 집이 없어서 처음에는 무섭더군요. 그래도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무서움은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살아보니 무서움은 잠시였다. 무서움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던 아픈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고 싶을 정도로 돌덩어리처럼 차갑고 딱딱해졌던 마음이 서서히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커다란 정신적 충격 뒤에 찾아온 암이라는 육체적 고통도 이 곳에 와서 치유됐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이것이 갖는 놀라운 치유력을 경험했는데, 자연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예술은 창작과정에 고통이 따르지만 자연은 이런 고통마저도 없습니다. 자연은 아무런 고통없이 저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예술로도 극복하지 못한 내 마음의 상처를 집 주위에 펼쳐진 자연이 결국 낫게 해준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유난히 넓은 창이 많았다. 특히 작업을 하다가 잠시 쉬는 공간으로 마련한 거실과 침실은 두 쪽 벽면 전체가 유리창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커피숍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할 정도였다. 잔디가 잘 가꿔진 정원과 그 뒤로 크고작은 산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처음 이 곳에 와서 1년 정도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시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도 듣지 않았지요. 매일 집 주변을 산책하고 정원에서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비가 올 때는 비소리를 듣고 비를 보면서 앉아있는 느낌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곳에 들어오기 전 ‘땅따먹기’ ‘꽃 피는 시간’ 연작을 선보였던 백 교수의 작품은 이 곳에 들어온 후 서서히 바뀌어갔다. 이 곳에 들어올 즈음에 선보였던 것은 ‘별의 집’이었다.
“2002년 ‘별의 집’이라는 시집을 내고 이를 주제로한 그림도 그렸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고 온 후 선보인 작품인데, 저의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이겠지요. 그 전의 작품이 육체의 시간을 상징화한 것이었다면, ‘별의 집’부터는 정신의 시간을 담은 것입니다.”
‘별의 집’은 피라미드를 소재한 작품이다. 그에게 있어 피라미드는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피라미드 속의 미라는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영혼 불멸, 부활 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라미드는 무덤이지만 현재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듯이, 그에게는 예술의 집을 상징한다. 결국 예술의 집이 별의 집을 의미하고, 이것은 고통을 이겨내고 새롭게 부활하는 영혼, 치열하게 작업하고자 하는 예술혼 등을 가지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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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혜 작 ‘Grid- Poetic’ |
‘별의 집’이란 작품은 그에게 ‘꽃 피는 시간’을 그리면서 땅에 머물렀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한 의미도 가진다. “꽃을 그리는 것은 결국 땅을 바라보는 수평적 구도를 의미합니다. 별은 꽃을 하늘로 던져서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지요. 시선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면서 수직적 구도로 변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전원생활이 해를 거듭하면서 ‘별의 집’에서 그의 작품은 ‘그리드’로 옮겨갔다. 2009년 전시부터 이 작품을 선보였는데, 전원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그가 만들어낸 ‘그리드’ 연작은 캔버스에 수평선과 수직선을 수없이 교차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제 시집의 문장을 테이프처럼 오려 캔버스에 수평과 수직으로 붙이고, 여기에 진짜 테이프도 덧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원고지 칸 모양의 그리드가 공간을 만들고, 다시 색채가 있는 테이프들이 덧입혀지면서 평면 위에 색다른 시각적 층위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지요.”
많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하면서 화면의 가장 아랫부분의 모습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춰져가는데, 이것을 백 교수는 치유의 과정으로 봤다. 이것은 옛 시간을 덮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옛 상처들이 치유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후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줄였던 백 교수는 이 작업을 한 후 서서히 다시 도시로 나가고, 사람과의 만남도 늘려갔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0년에는 대구 도심에 작은 아파트도 구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대학에서 운영하는 CU갤러리의 관장을 맡으면서 대구에서 해야할 일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와촌집과 대구의 아파트를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무수히 붙이는 것이 단순한 노동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견딜 수 없던 것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비움이 곧 마음의 평안이자 행복인 것도 알게 됐지요. 이 모든 것이 결국 자연이 저에게 준 힘과 용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겠지요.”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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