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농암종택 ‘애일당 구로회’ 재연

  • 이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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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0-18 07:19  |  수정 2012-10-18 08:51  |  발행일 2012-10-18 제8면
■ 경로·전통음식 500년 역사 잇는다
한국국학진흥원·예안향교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기로연 개최
80세 이상 노인 등 초청
20121018
농암 선생이 1519년 안동부사로 재직 시 80세 이상 노인을 모셨던 화산양로연을 묘사한 그림. <안동시 제공>

한국국학진흥원과 예안향교는 18일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80세 이상 노인(150명)과 아들, 며느리, 손자 등을 초청한 가운데 애일당(愛日堂) 건립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및 기로연(耆老宴)을 개최한다. 특히 500년 동안 농암 이현보(1467∼1555) 가문의 전통으로 내려오다 중단된 ‘애일당 구로회(九老會)’가 이날 재현될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강호문학의 창시자인 농암은 1512년 부모를 위해 종택 인근 강 기슭에 정자를 짓고 애일당이라 이름 붙였다. 애일은 ‘하루하루의 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애일당이란 부모가 살아 계신 나날을 아끼는 집을 의미한다. 농암은 특별한 날이나 명절이면 부모와 마을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아우들과 함께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농암은 1519년 안동부사로 재직하면서 성별과 신분을 불문하고 80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화산양로연(花山養老燕)을 개최했다. 기록에 따르면 청사마당과 마루에는 수백명에 달하는 노인이 모였는데, 농암은 “안동의 옛 풍속이 나이는 숭상하나 관직은 숭상하지 않는다”며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고 연령을 기준으로 초대했다. 고을 원의 신분으로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당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는 파격적인 행사였다.

또 1533년 홍문관 대제학이라는 정2품의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애일당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노인 여덟 분을 모시고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이날 모임을 아홉 분의 노인이 애일당에 모였다는 뜻에서 ‘애일당 구로회’라고 이름 지었다. 당시 농암의 부친 이흠(李欽)은 94세, 나머지 여덟 명을 포함한 전체 연령은 740세. 1569년 구로회에는 퇴계 이황도 69세 나이로 참여했다. 이 모임은 1979년 후 중단됐다.

이번 행사의 백미는 500년 전 농암이 애일당을 세우고 구로회를 만들었을 때 이를 축하하기 위해 동료와 친구 43명이 보내온 친필 시가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보물 1202호)’이고, 이들의 후손이 참여한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은 “행사를 계기로 효문화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면서 “혈연중심의 전통적 효사상에서 탈피해 세계보편적 효문화로 확대시켜 나가야만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이두영기자 vic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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