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스페셜] 건보공단, 담배소송

  •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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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3 07:20  |  수정 2014-05-03 07:21  |  발행일 2014-05-03 제2면
20140503

3?
미국선 220조원 배상 요구했는데 왜 537억원밖에 안했나
여러가지 질환 중 왜 폐암·후두암에만 한정했나
일본계 담배회사인 JTI는 빼고 왜 3개 담배회사만 상대하나

지난달 10일 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3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담배소송을 제기했을 때 많은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배상금액에 의아해 했다.

1998년 미국의 46개 주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무려 2천60억달러(220조원)라는 천문학적 배상액을 받기로 합의한 것과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지만 건보공단측은 이번 소송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이기는 소송을 위한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고 했다.

이번 소송에서 건보공단은 왜 담배와 연관된 암을 세 가지로만 한정했을까. 또 왜 537억원의 배상액 기준과 함께 수많은 담배회사 중 하필 3개 회사만 지목한 것일까.

◆왜 세 가지 암에 537억원

먼저 537억원이라는 금액 산정 부분이다.

당초 건보공단은 92~95년 건강검진을 받은 130만명을 19년 동안 추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공단 정책연구원의 자체연구, 저명한 역학전문가인 연세대 교수팀과의 공동연구 등 세 차례에 걸친 연구 결과 암, 뇌·심장질환 등 35개 질환의 진료비가 2012년 기준 1조7천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금액을 소송가액으로 잡지는 않았다. 대신 서울고등법원 판결 및 연구기관의 연구결과,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환자로 한정, 537억원을 산출해냈다.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이상 20년 이상 피웠고, 총 흡연기간이 30년을 넘어선 폐암(소세포암, 편평상피세포암) 및 후두암(편평세포암) 환자의 10년치 공단부담 진료비이다.

승소율이 높은 대상만을 골라 반드시 이기는 재판을 하겠다는 건보공단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담배와 관련된 여러가지 질환 중 세 가지 암으로 한정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관호 영남대병원 권역 호흡기전문질환센터장은 “건보공단이 제시한 폐암과 후두암은 의학계에서도 담배가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담배를 피우면 60여종의 발암물질이 입을 통해서 후두(양쪽 성대)를 거쳐, 기관지로 내려간다. 이때 후두에서 가장 많은 평편상피세포가 담배의 지속적인 영향으로 이형화(암 전단계 세포)가 진행된다. 그리고 금연하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우면 결국 암으로 발전한다. 후두암은 폐암보다 발병률이 높다.

후두를 지난 담배연기는 기관지로 내려간다. 이 센터장은 “기관지의 경우 관 자체가 크기 때문에 담배의 발암물질이 머무는 시간이 짧다. 때문에 기관지에 암이 생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특히 선암의 경우 담배와 연관성이 가장 작은 암이다. 이 때문에 건보공단이 선암을 제외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이번 소송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보는 폐암 환자 중 흡연경력이 전무한 사람은 없다. 그만큼 흡연과 암과의 상관관계는 깊은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담배의 위험성이 더 많은 국민에게 알려지고, 금연인구도 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왜 3개 담배회사만

지난해 국내에 판매중인 담배는 138종. 업체별로 보면 KT&G가 판매하는 담배 종류가 67종으로 가장 많고, 말보로로 대변되는 한국필립모리스가 28종이다. ‘던힐’담배를 판매하는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가 27종, 과거 ‘마일드세븐’으로 유명했던 JTI코리아가 16종이다. 이들 4개 담배회사가 사실상 국내 담배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건보공단은 이번 담배소송에서 일본계 담배회사인 JTI를 뺐다.

JTI가 이번 소송에서 빠진 것도 승소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건보공단측의 전술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JTI는 필립모리스·BAT와는 달리 담배소송에서 패한 전례가 없다. 또 건보공단은 JTI를 소송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에 대해 ‘낮은 시장 점유율’을 꼽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해외에서 패소 또는 합의한 사례가 있는 필립모리스·BAT와 달리 패소 전례가 없는 JTI를 제외시켜 승소 가능성을 높인 것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필립모리스와 BAT 등은 2009년 미국 연방대법원으로부터 8천만달러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소송 과정에서 담배회사가 니코틴 중독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다는 내부문건이 드러난 게 재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법조계에서는 “미국에서도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승소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아주 적었을 것”이라며 “그만큼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5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첫 담배소송부터 90년대 흡연자들이 미국 7대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초대형 소송에 이르기까지 이미 재판 과정에서 필립모리스와 BAT의 약점이 노출됐다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필립모리스와 BAT는 담배소송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제출했고, 패소한 사례가 있다”며 “담배의 유해성과 관련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허위로 게시한 것이 인정돼 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JTI는 흡연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가 없는 만큼 담배회사의 위법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학계는 건보공단의 담배소송 결과에 관계없이 공단 입장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이번 소송이 주목받으면서 담배가 해롭다는 인식이 일반화됐고,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소송배경
△흡연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흡연자(국민)는
☞건강증진법상의 부담금 지불(1갑당 354원)

△흡연 관련 진료비 추가 지출 부담금 발생
☞공단 빅데이터 활용 연구 결과 흡연자는 암 발병률이 최대 6.5배 높고 매년 1조7천억원 추가 지출

△원인 제공자인 담배회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음
☞KT&G 당기순이익 : 2011년 1조308억원, 2012년 7천251억원

만성폐쇄성폐질환·버거씨병
다음 소송 대상될 가능성 높아


건강보험공단이 담배소송에서 이긴다면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의료계는 다음 소송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과 버거씨병(폐색성혈전혈관염)이 될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COPD 환자의 90%는 담배를 장기간 피운 흡연자다. 이름도 생소한 COPD.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한 질병이다. 1970년대 말보로 담배광고의 무뚝뚝한 사나이로 등장했던 에릭 로슨도 장기간의 흡연과 그로 인한 COPD로 인해 지난 1월 숨졌다.

국내에서도 남자는 40세 이상에서 20.2%, 65세 이상에서 47.7%가 COPD로 고생하고 있다.

COPD와 폐암은 발병 과정이 전혀 다르다. COPD는 유해물질이 호흡을 통해 폐를 비롯한 호흡기계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기능을 점점 떨어뜨리는 병이다. 회복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만성질환이다. 폐암은 염증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세포의 증식으로 생긴다. 암세포가 정상조직을 점점 파괴한다.

그러나 두 병 모두 담배가 가장 확실한 발병 원인이다. 보건당국은 전체 암의 약 30%가, 특히 폐암은 약 90%가 흡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COPD 환자의 약 90%도 담배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둘 다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흡연자이거나 과거 담배를 피웠다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전문의들은 45세 이상이면서 하루에 한 갑 이상 20년 넘게 담배를 피운 사람은 6~12개월에 한 번씩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폐 영상을 찍어보길 권한다. 또 40세 이상이면서 흡연하는 사람은 6개월에 한 번 호흡 능력을 확인하는 폐활량 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버거씨병(폐색성혈전혈관염)도 담배가 원인이다. 손이나 발, 주로 무릎 아래의 말초 동맥과 정맥에 염증이 생기거나 혈관벽의 변화에 의해 혈관이 수축하거나 좁아져 혈전에 의해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질환이다. 담배를 오래 피울수록 발생 확률이 높다. 버거씨병을 완전히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현재까지 버거씨병에 대해 유일하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은 금연뿐이다.

담배회사 입장에서 COPD와 버거씨병까지 소송 범위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파진다. 폐암은 생존율이 낮은 편이다. 이에 비해 COPD와 버거씨병 환자들의 경우, 생명이 위급한 질병이 아니다. 만성질환이다. 장기적으로 치료비가 많이 든다는 의미다. 그만큼 폐암보다 소송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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