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 청송 .10] 김기덕 감독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 주산지

  • 배운철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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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4   |  발행일 2015-08-24 제12면   |  수정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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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남일보와 청송사진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제6회 청송 주산지 관광사진 전국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정을식씨의 ‘주산지의 아침’. 주산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 이후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다. 영화는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성장과정을 밀도있게 보여준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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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산지의 봄. 호수 위 주산암에 버려졌던 아기는 노스님이 거두어 동자승으로 살아간다.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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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주산지. 동자승은 어느덧 17세 소년이 되고, 요양 차 주산암에 찾아온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절을 떠나 속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배운다.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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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가을의 암자로 숨어든 남자, 하지만 끝내 붙잡혀 죗값을 치른다.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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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 감옥에서 나온 중년의 사내는 겨울의 주산암을 찾아 피나는 구도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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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노스님이 된 사내는 자신처럼 주산암에 버려진 아기를 데려다 키우며 다시 봄을 맞는다. 그리고 사계절처럼 인간의 삶도 언제나 다시 시작되고 순환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주왕산 별바위골 끝자락 안긴 저수지
2003년 영화개봉 후 방문객들로 북적

사계절 변화하고 다시 순환되는 모습
번뇌·생사에 휘둘리는 인간사와 닮아

삶이 투영된 물빛엔 또 누군가의 계절이 담겼네


주왕산 별바위골 끝자락에 아름다운 주산지, 울창한 수림에 안겨 조용히 하늘을 열고 있다. 물은 신화적으로 고립되어 있지만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끊임 없이 외계로 흘러가고, 물 속에 뿌리내린 왕버들은 인간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동안 주산지는 그 시간들을 제 몸에 담고, 그 사이 계절은 오고 가고 다시 온다. 고립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지 않고, 흐르고 연결되고 변화하며, 마침내 다시 시작되는 자연의 법칙. 한 사람이 생각했다. 인간의 생이 계절의 순환과 무엇이 다르랴. 그리고 그는 그러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기 아름다운 주산지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그렇게 태어났다.


#1. 주산지의 봄, 여름

눈앞엔 산, 돌아봐도 산, 고개를 넘으면, 또다시 고개. 그래서 옛사람들은 청송을 ‘끝 없는 산길을 걸어 고개를 넘고 계곡을 지나야만 당도하는 곳’이라 했던가. 주산지는 산 넘고 고개 넘어 끝 없는 산길의 끝 골짜기에 자리한다. 사람들은 몰랐다. 오직 이 물의 호혜를 입은 사람들만이 오래오래 알았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2003년 개봉했다. 영화가 개봉된 후 사람들은 물었다. ‘저기가 대체 어디야?’

주산지의 ‘봄’, 새벽은 푸르다. 시리도록 푸른 물빛 속에서 왕버들은 더욱 깊은 청색을 띤다. 태양이 떠오르면 푸름은 연두가 된다. 수액으로 가득 차오른 나무들은 기지개를 펴며 탱글탱글하게 빛난다. 산도 물빛도 연두다. 개구리가 뛰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뱀이 깨어난다.

‘여름’ 주산지의 새벽은 희다. 무섭도록 하얀 물안개가 물과 나무와 숲을 휘감는다. 태양이 물안개를 몰아내면, 주산지는 초록의 얼굴을 드러낸다. 초록은 숨 쉴 수도 없는 뜨거움에 흔들리고, 비에 짙어지고, 바람에 스산해진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해 그 물가에 벽 없는 문 하나, 금강역사 두 분이 엄중히 지키고 선 문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저기 낮게 진동하는 물 위에 암자를 세웠다. 50여평의 바지선 위에 석등과 목어, 자그마한 연못까지 갖춘 절집이었다. 3개월에 걸쳐 전통예술 장인들과 미술가 등으로 구성된 팀이 공을 들였고, 그의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3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이 쓰였다. 주산지가 주왕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관계로 제작진은 환경부를 비롯해 관련 단체를 40여 차례 방문하고서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암자에는 노승과 동자승이 산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아이는 17세의 소년이 되고, 속세의 고통을 배운다. 요양차 암자를 찾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욕망과 집착을 떨치지 못한 채 결국 산사를 떠난다. 영화의 봄, 그리고 여름이다.


#2. 주산지의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통증과도 같이 타오르는 주산지의 ‘가을’. 단풍은 물결 속에서 더욱 현란하게 타오른다. 광기처럼 퍼져나가는 불길이다. 불길은 천천히 그러다 어느새 사그라지고, 세계는 앙상해진다. 대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주산지는 꽁꽁 언다. 눈이 내린다. 물과 땅과 하늘의 경계는 사라지고, 하나가 된다. 생명이 탄생하기 전 하늘과 땅이 붙어있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겨울’의 주산지는 바로 그때의 모습이다.

산사를 떠났던 소년은 집착이 낳은 분노를, 커져가기만 하는 분노를 경험한다. 결국 10여년 만에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가을의 주산지로 숨어든다. 다시 고통을 배우고 번뇌하고, ‘겨울’이 가는 동안 중년이 된 사내는 깨달음과 평온을 얻는다. 영화의 가을과 겨울이다. 그리고 ‘봄’. 사내는 노승이 되고 새로운 동자승과 살게 된다. 그렇게 생은 이어지고 계절은 순환한다.

김기덕 감독은 직접 영화 속으로 들어가 중년의 남자를 연기했다. 그는 눈 덮인 산을 오르고 꽁꽁 언 주산지를 맨살로 안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각본, 연출, 편집, 출연까지 1인 4역을 해냈다.

주산지의 사계절을 보여주기 위해 철마다 촬영이 이루어졌다. 2002년 5월부터 봄을 찍기 시작해 8월에 여름을, 11월에 가을을 촬영하고 이듬해인 2003년 1월에 겨울을, 그 뒤 3월에 마지막 봄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 제작진은 만산홍엽을 이룬 늦가을의 주산지를 최고로 꼽았다고 한다.

#3. 또 다른 누군가의 계절

‘저기가 대체 어디야?’했던 주산지는 이후 사계절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5년에는 삼성전자 파브의 CF광고 ‘임권택 편’과 KBS 드라마 ‘황금사과’, 2006년에는 KBS 드라마 ‘황진이’, 2007년에는 SBS 드라마 ‘푸른 물고기’ 등이 주산지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사진작가, 화가 등의 작품 배경 1순위로 떠오르며 예술가들의 발길도 북적이고 있다.

특히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로카르노 영화제,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등에서 인정받았고, 청룡 영화상과 대종상 등 국내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때 청송 사람들은 ‘작품상은 주산지 덕분’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한다.

김기덕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자승이 소년이 되고 청년,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는, 한 인물의 다섯 단락 인생 이야기를, 각 계절의 시작과 끝의 이미지를,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속에 내재하고 변해가는 속성과 숙성의 의미를, 그렇게 순환되고 생성하는 우리의 삶을, 순수 속의 잔인함, 욕망 속의 집착, 살의 속의 고통, 번뇌 속의 해탈을.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이, 사계절의 반복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지금 주산지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가을로 가고 있다. 이 세계의, 누군가의 계절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영남일보 DB
자문=김익환 청송문화원 사무국장
공동기획 = 청송군

■ 이야기 따라 그곳&

1721년 준공 주산지, 왕버들·물안개 일품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 8월 착공해 이듬해인 1721년(경종 원년) 10월에 준공된 저수지다.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입구가 협곡이며 축조 당시의 규모는 주위가 1천180척, 수심이 8척이었다고 전해진다. 물은 주산현(注山峴) 봉우리 별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흘러 주산지에 머무르는데, 지난 300여년간 마르는 일 없이 아랫마을인 이전리 사람들의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됐다.

입구에는 주산지를 축조하는 데에 공이 컸던 월성이씨 이진표(李震杓)의 공덕비가 서있다. 1771년(영조 47)에 그의 후손들과 조세만(趙世萬)이 세운 비석이다. 비에는 ‘한일자로 가로막아 물을 저장하니 / 은혜가 많은 농민들에게 흐르도다 / 천추에 잊지 못할 것인데 / 오직 한 조각 비석만 남았구나’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이후 수차례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는 제방 길이 200m, 폭 8m, 총 저수량은 10만8천t이다. 수질은 청정 1급수를 자랑한다.

특히 주산지에는 고목의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그루가 물 속에 자생하고 있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는 국내 30여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으뜸이라 해서 왕버들이라 부른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지 않고 물 속에 뿌리를 내려, 어릴 때부터 빠르게 성장해 수백년을 유유히 살아가고 있다. 잉어와 붕어 등 토종어류가 살고 있고, 인근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솔부엉이, 소쩍새, 너구리 등을 볼 수 있다. 물안개가 내려앉는 새벽녘의 풍경은 신비감을 더한다.

1983년 둑 확장 공사를 위해 물을 모두 빼낸 후, 30년 만인 2013년 11월 말 다시 물을 빼내고 3개월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새 물을 담기도 했다. 물 위의 암자는 영화 촬영 후 주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철거됐다.

청송=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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