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19> 유물로 본 감문국 ①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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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09   |  발행일 2015-09-09 제13면   |  수정 2021-06-17 14:54
모암동 출토 와질토기(2∼4세기 추정), 신라영향 안 받은 사실상 유일한 감문국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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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모암동 마을유적 11호 주거지에서 발견된 삼한시대 감문국의 항아리. ‘두귀달린항아리’(높이 18㎝)로 불리는 이 토기는 감문국이 존재하던 2~4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와질토기다. 사실상 거의 유일한 감문국 시대 유물 중 하나다.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 도록 발췌>

 

 

◇ 스토리 브리핑 

 

감문국(甘文國)은 1천500여 년 전 신라에 편입된 김천지역의 읍락국가(邑落國家)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등 옛 문헌에 감문국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만, 옛 김천사람들의 삶을 꿰뚫어 볼 정도로 풍부하지는 못하다. 또한 상당수 기록이 승자인 신라의 입장에서 쓰였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인 점은 김천시 일원에서 다양한 감문국 관련 유물이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출토유물은 감문국 멸망 후인 5~6세기의 것이지만, 김천시 모암동 마을유적에서는 삼한시대 감문국의 것으로 보이는 2~4세기의 토기가 발견됐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19편은 출토유물로 바라본 감문국에 관한 이야기다. 신라 편입 이후 감문국 유물에 대해서는 시리즈 20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

2005년 10월,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이 열렸다. 특별전은 감문국과 관련한 궁금증을 지녔던 김천시민과 지역민에게 의미 있는 전시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국립대구박물관은 경산을 시작으로 대구·의성을 비롯해 상주와 성주 등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지역특별전을 연이어 개최하고 있었다. 그 여섯째 순서로 김천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대구에서 열렸는데, 감문국 유물의 비중이 컸다.

특별전은 김천의 역사 흐름을 총 7장으로 구성하고, 각 시대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물 200여점을 전시했다. 19세기에 제작된 ‘조선전도(朝鮮全圖)’ ‘동여도(東輿圖)’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조선 후기 김천의 읍지인 ‘금릉지(金陵誌)’는 가치있는 향토사료로 대중에 소개됐다.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출토 신석기 토기류·석기류 등 선사시대의 귀중한 자료도 전시됐다.


두귀달린 항아리·짧은목 항아리
물 스미는 재질로 유리질 미형성
토기 제작기술 미완성 단계 입증
손잡이를 달아 실용성과 멋 가미
주둥이는 용도 따라 달리 제작해
신라 편입 이전 것이라 더 큰 의미


특히 특별전 3·4장에서 소개된 감문국 관련 유물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2005년 이전까지 감문국 유적과 유물에 대한 체계적 조사·전시가 이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감문국 유적 일부가 발굴됐지만, 역사왜곡과 문화재 침탈이 목적이었다. 광복 이후 간헐적으로 김천지역 고분이 발굴됐지만 대대적인 조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김천지역의 고대사 또한 지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옛 감문국의 중심지역인 개령·감문면 지역의 유적은 발굴이 더딘 상황이었다. 개발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이고, 경주처럼 확연히 눈에 띄는 유적이 없었기에 원활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김천시와 경북대박물관은 김천지역 고대사 연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천시와 경북대박물관은 2004년 2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감문국 유적 정비를 위한 지표조사’를 진행했다. 감문국 유적의 실질적 조사를 담당한 경북대박물관은 김천시 감문·개령면 일원 87.28㎢의 면적에서 감문국 유적을 조사했다. 감문국 중심부 지역의 고분과 산성 등을 실측했다. 각 지역에 흩어진 감문국 관련 유물의 소재도 파악했다.

당시 국립대구박물관의 특별전 또한 김천시와 경북대박물관의 조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때 전시된 유물들은 감문국과 김천지역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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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모암동 마을유적 11호 주거지에서 발견된 높이 25.5㎝의 ‘짧은목항아리’. ‘영남 문화의 첫 관문, 김천’ 특별전 도록 발췌
 

 

◆ 토기에서 엿본 감문국의 독자성

당시 특별전에 전시된 유물 중 김천시 모암동 마을유적 출토 토기는 감문국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모암동은 경북대박물관이 조사한 개령·감문면 지역과는 거리가 있지만, 삼한시대인 2~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출토됐기 때문이다. 개령·감문면 출토 유물 대부분이 감문국의 신라 편입 이후(5~6세기)의 것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모암동 출토 토기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감문국 시대 유물인 것이다.

모암동 유적의 대표적인 감문국 토기로는 두귀달린항아리와 짧은목항아리 등을 들 수 있다. 주거지 유적에서 발굴된 탓인지 항아리의 모양은 매우 실용적인 듯하면서도 나름 멋을 부린 티가 난다. 대체적으로 둥근 모양이지만 물을 담을 때 편리하도록 손잡이가 달려 있다. 항아리 주둥이는 펼쳐지거나 오므려져 있어 용도에 따라 달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모암동 출토 토기는 물이 스며드는 재질의 ‘와질토기’다. 이는 당시 감문국의 토기 제작 기술이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토기를 굽는 과정에서 유리질이 형성되지 않아 무르지만, 김천지역에서 발굴된 감문국 시대 유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감문국 중심지인 개령·감문면 지역 경우 5~6세기보다 앞선 시기의 고분이 발굴된 적이 없다. 감문국 역사 연구에 모암동 출토 토기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토기의 독특한 형태는 감문국이 독자적인 문화를 향유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재환 경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모암동 출토 토기의 경우 발굴된 감문국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비록 출토 유물이 소수지만 신라의 영향을 받기 전 감문국의 독자성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공동 기획:김천시

▨ 도움말= 이재환 경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대구·경북 문화재 약탈 스토리(영남일보)’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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