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21> 감문국의 전설 ① 원룡장군과 사달산 샘물(개령면 광천리)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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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3   |  발행일 2015-09-23 제13면   |  수정 2021-06-17 15:06
‘이무기도 龍(용)이 된다’는 샘물의 힘으로…소년, 천하장사 猛將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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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광천리 사달산 기슭에 위치한 원룡장군수. 감문국 소년 진동이 이 샘물을 마시고 나라를 지킨 원룡장군이 됐다는 전설이 김천지역에서 전해져오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스토리 브리핑

김천의 읍락국가 감문국의 전설은 현재까지 전해내려올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전설의 수가 적고 단순한 스토리 구조지만, 감문국이 남긴 무형(無形)의 흔적으로 손꼽힌다. 이에 영남일보는 감문국 전설을 이번 시리즈에서 연재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상상력을 전설에 덧대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21편은 신비의 샘물을 마시고 천하장사가 된 감문국 원룡장군에 관한 이야기다.

 

 

◆ 효심 지극한 소년

신라와 백제가 나라의 기틀을 갖추기 전인 삼한(三韓)시대에 한반도의 남쪽인 금릉(현재의 김천시 개령면)지역에 감문국(甘文國)이란 읍락국가가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풍부한 강줄기를 끼고, 그 물길이 빚어낸 넓고 비옥한 평야를 가진 덕택에 백성들의 생활은 여유롭고 인정이 넘쳤으며 고유의 문화가 발달했다.

따라서 이를 탐낸 인접 국가들의 침범 또한 잦았다. 그것은 읍락국가들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감문국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감문국의 동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이름이 진동(陳童)이란 소년이 살았다. 두 살 무렵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와 함께 어렵게 자랐지만 성품이 착하고 유순했으며, 남달리 효심이 지극해서 마을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농부였던 아버지 또한 소년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동북쪽 작은 마을 사는 孝子 진동
전투 부상으로 죽은 아버지 묘서
샘물 신비 알게 된 후 괴력 얻어

사달산의 용천바위 통째로 뽑아
마을 앞 냇가 징검다리 놓으려다
헛발질에 놓친 큰 바위 땅에 박혀

장군 임명되고 號‘원룡’ 하사받자
겁먹은 주변 小國 서로 화평 청해
감문국 평화·번영 구가 일등공신


그런 어느 해 여름, 감문국의 북쪽국가인 사벌국에서 적병들이 쳐들어왔고, 당시 수자리로 차출되어 취적산(또는 감문산)에서 국경 수비를 맡고 있던 소년의 아버지는 적군의 공격을 막다가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요행히 다른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부상이 심한 탓에 소년의 극진한 간병에도 불구하고 보름을 못 넘기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소년의 상심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이웃들과 친척의 도움으로 마을에서 가까운 사달산(四達山) 기슭에 부친을 장사 지냈고, 생전에 효도하듯 부친의 무덤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날도 부친의 무덤 옆을 지키던 소년은 문득 가까운 숲 속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부귀한 집안의 사동인 듯 보이는 두 명의 동자였는데, 차를 끓일 물이라도 길으러 가던 중이었던지 손에는 붉은 띠를 맨 작은 물병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둘 다 용모가 해맑고 옷차림이 단아해서 세속사람 같지 않았다. 소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두 동자는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다.

“아무리 도사님이라도 그렇지, 하필이면 이 멀고 외진 곳까지 물을 길으러 보낼 게 뭐람.”

한 동자가 불만스럽게 투덜대자 다른 동자가 달래듯 말했다. “그건 다 이유가 있어.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샘은 예사롭지가 않거든. 도사님께 듣기론 지하를 흘러 다니는 땅의 정기가 사달산 지하에 수천 년간 모여서 솟아나는 샘물로 만일 이무기가 마시면 곧장 용이 되어 승천하고, 사람이 마시면 힘이 세져서 천하장사가 된다고 했어. 정말 신비한 샘물인 셈이지.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도사님이 우리에게 이곳 금릉까지 물을 떠오라고 보냈겠어.”

“그렇다면 얼른 샘물을 떠 가도록 하자. 도사님이 기다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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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물의 비밀을 알아내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 소년은 자신이 부친의 묘소 옆에서 잠시 선잠이 든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방금 꾸었던 꿈이 너무 또렷해서 현실처럼 여겨졌다. 기이하게 생각한 소년은 꿈에서 몰래 동자의 뒤를 쫓았던 기억을 떠올렸고, 숲 속으로 찾아 들어갔다.

너른골 기슭을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소년이 손으로 바위 사이에 수북이 쌓인 낙엽더미를 걷어내자 숨어 있던 맑은 샘이 요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샘물은 맑았으며 차고도 달았다.

그 뒤로 소년은 부친의 묘소를 찾을 적마다 샘물을 마시길 잊지 않았다. 그렇게 샘물을 마신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소년은 불현듯 몸에서 알지 못할 힘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장난삼아 숲 속에 있던 바위를 들었더니 놀랍게도 짚단처럼 가볍게 들리는 게 아닌가. 또한 어른 허리 굵기의 소나무도 소년이 힘을 쓰자 풀포기처럼 쉽게 뽑혔다.

소년은 비몽사몽간에 본 동자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신비한 샘물의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기로 했다. 만약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샘을 차지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년은 자신의 힘을 좋은 곳에 쓰기로 했다. 먼저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에 돌다리를 놓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급격히 물이 불어나서 마을사람들이 시내를 건너기 힘들었던 것이다.

소년은 인적이 끊어지는 야밤을 틈타 사달산 산기슭에 있던 돌덩이를 들어다가 시냇가에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힘이 세진 것은 물론 밤눈마저 밝아진 소년은 서너 명의 장정이 들어도 꿈쩍 않을 큼직한 돌덩이를 들어다가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거운 돌덩이를 옮겨 다리를 놓기를 수십 차례, 저만치 먼동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커다란 돌덩이 몇 개만 더 옮겨놓으면 징검다리가 완성되는가 싶었지만, 주변의 돌덩이가 바닥을 드러냈다. 마땅한 돌이 없나 사방을 둘러보던 소년의 눈에 사달산 기슭에 박혀 있는 커다란 용천바위가 들어왔다. 소년은 바위를 깨어서 남은 징검다리를 놓기로 했다. 하지만 바위는 너무 크고 단단해서 깨어지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소년은 바위를 통째로 옮겨놓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천하장사의 힘을 얻은 소년으로서도 집채보다 큰 용천바위를 통째로 옮기는 것은 무리였다. 한동안 용천바위와 씨름이나 하듯 용을 쓰던 소년은 땅에 박힌 바위를 가까스로 뽑아내어 등에 업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위를 빼내느라 힘이 빠진 탓일까. 산길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고, 등에 지고 있던 바위가 아래쪽으로 굴러 내려갔다. 이어서 시내 옆의 깊숙한 웅덩이에 큰 굉음을 내며 처박혔다. 소리에 놀란 마을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기척이 들려왔다.

 

◆ 감문국을 지켜내다

그 뒤로도 소년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어느 사이엔가 소년이 천하에 드문 장사라는 소문이 감문국은 물론 주위 소국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이를 알게 된 감문국 왕은 소년을 궁전으로 불러들여 완력을 시험해본 뒤에 감문국의 장군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친히 ‘원룡(元龍)’이란 호를 하사했다.

몇 년 전에 병사로 전투에 나섰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부친의 일을 잊지 않고 있던 원룡장군은 병사들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상시의 엄격한 훈련만이 전쟁을 미연에 막고, 전투에 나선 병사들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뛰어난 통솔력과 지혜, 그리고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천하장사의 힘을 가진 원룡장군에 대한 소문은 주변 소국으로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주변의 아포국과 주조마국, 어모국과 문무국, 배산국 등이 지극한 예를 갖춰 화평을 청해왔다.

또한 당시 자주 분쟁을 일으켰던 사벌국 역시 국경을 침범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감문국은 오래도록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후일 사람들은 사달산에서 소년이 샘물을 마시고 힘이 세어졌다는 샘을 찾아내었고, ‘원룡장군수(元龍將軍水)’라 불렀다고 한다.

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대구·경북 문화재 약탈 스토리(영남일보)’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공동 기획: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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