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는 ‘대풍’ 農心은 ‘흉년’…쌀값 폭락에 성난 農民 시름 가득

  • 이하수,마창훈,명민준,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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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9 07:33  |  수정 2015-11-09 09:37  |  발행일 2015-11-09 제3면
야속한 풍년…쌀값 대란 원인과 대책
20151109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구나. 명년 하사월에 관등놀이 가자.” 국내 쌀농가가 3년 연속으로 풍년을 맞았지만, 이 같은 풍년가는 울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쌀값 하락으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농업인들의 가슴에는 흉년이 든 상황이다.


올 기상조건 좋아 생산량 5년이래 최대치 예상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들어

쌀 생산과 소비 실태

올해는 쌀농사를 짓는 데 있어 최상의 기상여건이었다. 벼 낟알이 익는 시기(9월)에 일조량이 늘어나는 등 생육 환경이 좋았다. 지난 여름 한때 가뭄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비가 내려 완전히 해갈됐다. 또 장마와 태풍, 병충해도 없어 이삭수와 낟알수는 증가했다. 이로 인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 5년 이래 최대치로 분석되고 있다.

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쌀 예상생산량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국내 쌀 생산량은 425만8천t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풍년이었던 전년도(424만1천t)보다 0.4% 정도 증가한 수치다. 경북의 올해 쌀 예상생산량은 지난해(57만82t)보다 0.1% 증가한 57만459t이 될 전망이다.

올해 쌀 예상생산량은 10년 전인 2005년(476만8천t)보다 10.7% 줄어든 상황이다. 농지가 택지로 개발되고,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쌀 생산량이 많다며 농업인들이 시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쌀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해왔기 때문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65.1㎏으로 전년도(67.2㎏)보다 3.1% 정도 줄어든 상황이다. 10년 전인 2005년(80.7㎏)에 비해서는 무려 19.3%나 줄었다.

이는 식사습관이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면, 샐러드 등 서구식으로 변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로 인해 농업인들의 주요 유통망이었던 민간RPC(미곡종합처리장)나 정미소에서는 쌀 재고량이 남아돌아 올해 매입량을 대폭 줄이고 있다.

자연히 농업인들의 한해 농사 실적인 쌀값은 2013년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13년 80㎏당 18만3천560원에서 올해 현재(10월25일 기준) 15만4천132원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민간RPC와 정미소의 매입가격도 지난해 매입가(40㎏당 5만3천원)보다 1만원 정도 줄어든 4만2천원(40㎏·현재기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예상재고량 48만t 합치면 모두 136만t
적정량보다 56만t많아…年 관리비만 4천억원

국내 쌀 재고량

재고 쌀은 정부가 매년 시장격리용으로 사들이거나 쌀 소비 감소로 시중에 쌓인 것을 말한다.

현재 정부의 양곡 창고에 있는 쌀 중 가장 오래된 쌀은 2012년산 약 10만t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3년째 이어진 풍작으로 올해 예상재고량인 쌀 47만8천t이 재고곳간에 들어가면 국내쌀 재고량은 136만t을 넘어설 전망이다. 재고 적정규모가 80만t인데, 재고량이 약 56만t이나 많은 것이다.

이로 인한 관리비용 누수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재고 쌀은 전국 3천900여곳의 양곡창고에 나눠 보관되는데, 쌀 10만t당 연간 316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간 재고 쌀을 관리하는 데만 4천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좀 더 받을 수 있는 농협에 수매하려 장사진
하락한 가격에조차 제때 출하 못해 한숨

이중고 겪는 농민들

계속되는 쌀값 하락으로 농업인들의 시름도 날이 갈수록 깊어져가고 있다. 도내 주요 쌀 주산지인 상주 농업인들은 쌀값이 폭락하면서 수확한 벼를 제때 출하하지 못해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정미소보다 6천원 정도 높은 가격(40㎏당 4만8천원선)에 산물벼를 수매하는 농협에는 벼를 출하하려는 농민들이 몰려들어 혼잡을 이루고 있다. 농협의 수매 능력이 한계에 달할 경우 민간 정미소에 더 낮은 가격(40㎏당 4만2천원선)으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함창농협의 경우 목표량 13만가마를 모두 사들여 수매를 종료했으며, 30만가마를 수매할 계획인 상주농협도 곧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벼 출하가 농협으로 몰림에 따라 지난달 30일과 지난 4일에 벼 수매를 한 인평동 상주농협 미곡처리장의 경우 벼를 실은 차량이 1.5㎞까지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한 농민은 “어제 오후 6시에 와서 2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가격이 비교적 높은 농협에 벼를 내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 쌀 수매가 마무리에 접어든 의성지역도 마찬가지다.

의성 서부지역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도정공장의 경우 지난 달 4만2천원 선에서 물량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가격이 점점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자 매입을 중단한 상태다. 의성군통합RPC와 안계RPC는 지난달 12일부터 최근까지 약 2만1천여t을 수매한 가운데, 수매가를 어느 선에서 결정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쌀값폭락에 대해 농업인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 농업인은 “정부가 시장의 공급물량을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하기보다, 수매자금 지원 등의 일시적 미봉책에 급급한 것이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상주농민회는 최근 1t짜리 벼 수십포대를 시청마당에 야적하고 시위를 했다. 고령군농민회와 성주군농민회도 각각 군청과 농협 군지부 앞에 40㎏짜리 벼 수백포대를 쌓아두고 집회를 열었다.


정부, 올해안 59만t 매입…비축미 방출 자제
경북도선 쌀 소비 홍보 강화 등 원론적 대책뿐

정부와 경북도의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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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비축미 수매가 지난 2일 군위군 정동창고에서 열려 검사원들이 품질검사를 하고 있다. 수매가격은 40㎏ 1포대당 1등급의 경우 5만2천원으로 농민에게 매입 당일 지급하고 수확기 산지 쌀값을 감안해 내년 1월 최종 매입가격을 확정해 정산하게 된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쌀 재고 증가로 인한 가격하락으로 농민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와 경북도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지난달 26일 ‘수확기 쌀 수급안정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 풍작에 따른 대책을 내놓았다. 농식품부는 올해 쌀 생산량 중 20만t을 시장격리 미곡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매입가격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5만2천원(40㎏·1등품 기준)선이다.

공공비축미 36만t과 해외공여용 쌀 3만t을 포함해 정부는 올해 59만t의 쌀을 매입할 계획이다. 민간RPC 등이 쌀을 매입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금도 풀 계획이다.

또 쌀값 안정을 위해 수급이 불안해지거나 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한 정부가 매입한 쌀의 시장 방출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도 정부 방침에 따라 공공비축미곡 8만2천t과 시장격리미곡 4만4천t을 다음달 31일까지 추가로 매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청소년 대상 식생활 교육과 쌀 소비 홍보 강화 등의 원론적 방안 외에는 사실상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상주=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의성=마창훈기자 topgun@yeongnam.com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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