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김천 농소면 월곡리 ‘한우선지국’ 박영수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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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5   |  발행일 2016-03-25 제42면   |  수정 2016-03-25
“소는 내 운명”…소장수, 국밥집 사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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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와 선지, 잘 고아낸 사골육수가 그려내는 경상도 국밥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우선지국. 장터국밥에 육개장을 합친 버전이다.

국밥집 사장을 ‘오너셰프’라 부르면? 초점 맞지않는 사진 같다. 국밥집 사장은 역시 국밥집 사장이 딱이다. 기자는 요즘 경상도 육개장 원류를 정리하기 위해 지역의 명품급 국밥집을 수소문하고 있다. 김천에 괜찮은 소고기국밥집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동김천IC에서 8분쯤 걸리는 농소면 월곡리 한 곳에 있었다. 김천혁신도시권과 맞물려서 그런지 주변은 상가지역이 아니었다. 그냥 벌판에 외따로 서 있는 듯한 복합상가에 입주해 있었다. 상호가 적힌 간판도 없었다. 그냥 ‘한우선지국’이 가게 이름이다. 오죽 국을 강조하고 싶었으면‘○○식당’ 같은 상호를 버렸을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그렇게 층고가 높은 국밥집이 있을까 싶었다. 방앗간 건물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찜질방 하던 건물이었다. 국밥집은 맛 이전에 주인의 관상맛이 좋아야 승률이 높다. 주인의 관상을 봤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 레슬링 선수 같은 각진 얼굴, 다부진 상체,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서글서글한 표정, 그러면서도 성실함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믿음을 준다. 넓은 홀은 점심 무렵이라서 손님으로 흘러 넘쳤다. 박영수 사장(61)은 잠시도 가만 있지 않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카운터를 보다가 국이 나오면 주방 입구로 달려가서 직접 손님 상에 세팅한다. 깍두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직접 장만한다. 사장 겸 조리사·홀매니저·찬모·주차관리까지 1인5역이다. 무려 하루 16시간 국밥에만 올인한다. ‘초인적’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팔자가 아니고서 저토록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할 수 없다. 그는 국밥집 사장이 천명이고 천직일 수밖에 없다. 관상을 봐도 그는 국밥집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포스다.

◆ 한때 유명한 소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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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저렴하지만 가장 울림이 큰 국밥을 자신하는 박영수 사장.

국을 한 숟가락 떠먹어봤다.

모처럼 ‘진검국밥’을 만났다. 소고기·선지·우거지·육수가 똘똘 뭉쳐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레시피를 조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가 만족한 표정을 짓자 그가 곁에 앉아 지난 세월을 실처럼 풀어낸다.


42년前 축산업 첫발…사육·도축·유통
식육점 성공 이어 식육식당 오픈 고배
15년前 국밥집 연 후 2010년 현 위치로

구제역에 1년 허탕…100여곳 맛 유람
‘푸짐하고 저렴하되 맛있게’ 대박 승부
하루 16시간 국밥 올인 원천기술 터득
식감 살린 우거지 숙성법 ‘신의 한수’



구미시 고아읍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부터 고아읍 봉한리에서 축산업을 시작한다. 소도 키우고 도축도 하고 유통하는 것까지 원스톱으로 배웠다. 당시 구미에서 비육우 농가를 3곳 선정할 때 그도 포함됐다. 제대 후 소장사도 경험했다. 당시 대구시 서구 내당동 신흥축산에 소 도축을 맡겨봤지만 어찌된 셈인지 항상 40만원 이상 밑졌다. 소를 키우는 것도 소를 잡아 고기를 파는 것도 자기한테는 맞지 않았다. 고부가가치는 식육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선산터미널 근처 관광호텔 1층에서 터미널식육점을 운영했다. 예상이 적중됐다. 구미, 선산, 칠곡 쪽에서 셋째로 고기를 많이 판다. 가지를 하나 더 달았다. 칠곡군 북삼읍에서 자기 이름은 건 ‘박영수식육식당’을 오픈한다. 너무 시골이고 손님 치다꺼리 때문에 실패를 했다. 고기를 찾는 VIP 뒷수발이 힘들었다. 7년간 맘고생이 심했다. 다시 자기만의 국밥집을 15년 전에 론칭한다.

2010년 현재 자리로 이전을 한다. 근처에 중식당 하나 말고는 이렇다 할 만한 식당이 전무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곳에 왜 국밥집을 차리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자리는 육회, 횟집 등이 스쳐갔지만 다 망했다.

개업을 했지만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김천은 외지인에게 텃세가 셌다. 구미 출신이 국밥집을 한다고 하니 대다수 외면했다. 하루 5만~7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찬모도 구하기 어려웠다. 차편이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구제역과 천안함사건 후유증은 상당했다. 그렇게 1년을 허탕쳤다. 한 명씩 찾아온 시골 노인은 여기가 잠자는 곳인 줄 알고 툭하면 목침을 찾는다. 기가막힐 지경이었다. 전단을 100만원어치 돌렸다. 소주 1천원, 선짓국은 3천원. 수육도 3개월간 서비스로 냈고 여름에는 생수도 서비스로 주었다.

역시 맛이다 싶어 전국 유명 육개장 현장조사에 착수한다.

경기도 광주 쌍룡해장국, 서울 청진옥, 포천 양평해장국, 삼천포 신라해장국, 백종원 추천 국밥집 등 100여곳을 유람했다. 자기보다 형편없는 국맛이다 싶었는데 손님은 몇 배로 더 밀려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분석에 들어갔다. 일단 국밥집은 푸짐하고 저렴하고 맛있어야 대박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운좋게 천연암반수를 갖게 됐다. 예전 찜질방의 시설이다.

◆ 맛과 레시피 분석

국밥을 맛보았다. 선지해장국, 쇠머리곰탕, 설렁탕, 우거짓국, 육개장, 장터국밥 등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하루 이틀에 터득될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재료 배합도 절묘했다.

특히 그만의 소피 다루는 방식이 남달랐다. 도축장에서 갓 나온 피는 빨리 갈무리하지 않으면 못 먹게 된다. 소피에 물과 소금 정도만 넣고 30~40분 안착시켜야 된다. 소피 농도 관리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을 적게 넣으면 피가 딱딱해진다. 선지를 뜨거운 물에 잘 익히는 것도 맛의 원천이다. 미지근하면 핏물이 빠져나와 맛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팔팔 끓여도 안된다. 15~20분 끓이면 선지가 둥둥 뜬다. 묵처럼 주걱으로 저어주지 않으면 선지가 바닥에 눌러붙어 못먹는다. 선지 덩어리도 어른 주먹만 한 게 좋단다. 여느 국밥집 선지는 대다수 축구공만 하다. 너무 크면 피의 떫은 맛이 빠져나오고 비린내도 진해진다. 선지는 매일 오후 2~3시 갖고 온다. 전화를 하면 아들 정인씨가 선지 끓일 준비를 한다.

다음은 사골로 육수내기.

6시간 찬물에서 핏물을 빼낸다.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막이 생겨 핏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사골, 등뼈, 엉치뼈 등을 10㎝ 크기로 잘라둔다. 뼈를 찬물에 넣고 불을 붙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뼈를 다시 꺼내 남은 핏물은 버린다. 뼈를 다시 찬물에 씻고 다시 찬물에 사골을 넣고 5시간 초탕, 또 5시간은 재탕한다. 초탕과 재탕을 반반씩 섞어 사용한다. 이걸 그대로 사용하면 요즘 손님은 너무 진해 느끼해 한다. 자칫 곰탕 같은 국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물을 70% 정도 섞는다.

대파도 맛에 영향을 준다. 파는 봄부터 진이 나온다. 진이 나오면 국맛이 개운하지 않다. 파는 마지막에 고명으로 슬쩍 올리는 게 낫다는 걸 터득했다.

우거지 관리법이 가장 탁월했다.

여느 감자탕집은 우거지를 길게 째서 사용하는데 그는 식감이 안 좋아서 4~5㎝로 잘라 사용한다. 시래기는 고등어찌개 등에는 어울려도 소고기국밥에는 궁합이 안맞단다. 그래서 우거지를 사용한다. 우거지도 말린 건 별로다. 봄동 등 월동 배추는 추어탕에 더 맞지 선짓국에는 영 아니다. 국밥용 채소류는 섬유소가 씹혀야 제맛이 난다. 그런데 우거지 관리가 그렇게 어려웠다. 족히 수백단을 내버렸다. 그는 원천기술을 터득하기까지 절대 누구한테 기술을 받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최고의 스승이라 믿는다.

그는 우거지 맛도 삶는 과정에서 결판이 난다고 했다.

보통 묶은 끈을 끊고 우거지를 삶는데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끈이 묶인 우거지를 통째로 집어넣었다. 잎부분은 밑으로 가면 짓물러지니 상방으로 향하게 한다. 배추 하단이 물속에 푹 잠겨야 섬유소가 야들야들해진다. 우거지도 충분히 숙성시켜야 된다. 바로 꺼내 찬물에 씻으면 시금치처럼 파래진다. 그럼 식감이 안 살아난다. 우거지는 누른빛이 조금 감돌아야 식감이 살아난다.

5월부터 하우스배추가 출하된다. 그 새파란 우거지를 누렇게 숙성시키려면 어떻게 하지? 그는 궁리를 거듭했다. 누런 색이 나는 천연색소도 사용해봤다. 우여곡절 끝에 ‘신의 한수’를 알게 된다. 솥뚜껑을 닫고 삶으면 순간 솥안이 진공이 되고 10시간 정도 뚜껑을 닫은 채로 식히면 누런 빛깔이 감돈다는 걸.

깍두기도 소금간이 가장 중요하다. 설탕을 사용하면 진물이 형성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무는 1년 내내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월동무를 사용한다. 별일 없으면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무를 자른다.

그런 정성의 선짓국 한 그릇이 6천원. 수입이 아니라 1등급 한우라 ‘씹힘성’이 남다르다. 고기에 육즙까지 감돈다. 여느 소고깃국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육질이다. 그 가격에 저런 씹힘성이라니…. 오전 9시~ 밤 9시 영업. 김천시 농소면 월곡1리 97-1. (054)431-8385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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