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造船업 불황…위기의 대구 협력업체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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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02 07:12  |  수정 2016-05-02 07:35  |  발행일 2016-05-02 제1면
공장가동률 120%→30%…하루하루가 폐업 살얼음
기본 일감마저 줄어 공장 한산
“금융위기때보다 더 심각…막막”
직원들 떠나고 업종 바꾸기도
20160502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에 위치한 조선 분야 1차 협력업체 유나인더스 공장에는 주문 물량이 없어 프레스 기계 6대의 작동은 멈췄고, 자재와 출고되지 못한 제품만 곳곳에 쌓여 있다. (유나인더스 제공)

지난달 28일 오후 2시 달성군 화원읍에 자리 잡은 조선 분야 1차 협력업체인 <주>유나인더스. 시추선 및 해양구조물 내부에 들어가는 전로와 환풍구 서포트 구조물인 ‘유나 스트럿’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대우해양조선에 80%, 삼성·현대중공업에 15% 등 대형 조선업체에 납품하는 회사다.

이날 점심시간 이후 바삐 움직여야 할 공장은 한가했다. 1만3천여㎡의 부지에 있는 5동의 공장 어디에서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6대의 프레스 기계는 먼지와 기름 때가 쌓인 채 가동이 멈춰진 상태였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가동되던 철판 절단 레이저 기계도 꺼져 있었다. 공장에는 5천만원 상당의 출고되지 못한 제품이 포장된 채로 나무 펠릿 6개 위에 놓여 있었고, 볼트와 너트 등 부품은 마대에 담긴 채로 공장 곳곳에 놓여 있었다.

생산하는 제품이 없다 보니 이를 운반하는 트럭도 멈췄다. 이 회사가 보유한 5t 트럭 2대와 2.5t 2대, 1t 4대는 공장 앞 길가에 모두 주차된 상태였다. 평균 하루 세 번 이상 부품이나 완제품을 실어 날랐던 트럭들은 이날 하루 자체 휴무 상태였다.

대형 조선업체들이 사상 최악의 경영난을 겪으면서 대구지역 조선 관련 업체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병형 유나인더스 대표는 “조선사에서 수주를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협력업체도 일감이 없다. 한때 공장가동률 120%를 기록했던 우리 공장의 현재 가동률은 30% 수준이다. 지난해만 해도 잔업은 물론 주말 특근까지 해야만 납기일을 맞출 수 있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에서 우리 공장은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이라 불렸다. 하지만 요즘 직원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면 퇴근한다. 업무도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정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업체의 사정은 최악이다. 매출액은 2013년 130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2014년 120억원, 지난해엔 85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는 이보다 사정이 더 악화돼 매출액 9억원을 기록했다. 이 대표는 “이런 추세로 가면 올 매출액은 30억원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2014년 직원 수가 50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30명, 올해는 15명으로 줄었다. 강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지만 잔업과 특근 수당을 받지 못한 탓에 반토막 난 월급을 받은 직원들이 스스로 떠난 것이다.

이 대표는 “신규 채용 공고도 내봤지만 조선업계의 비전이 없으니 기피하는 분위기”라며 “지금은 직원이 떠난다고 해도 붙잡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금융위기 땐 기본적인 일감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대형 조선업체들이 수주를 못해 물량 자체가 없어 타격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에 있는 조선분야의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구 3산단에 위치한 한 업체는 조선분야의 주문 물량이 없어 업종을 변경하기도 했다. 경산의 선박엔진 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조선에서 주문 물량이 거의 없다. 선박엔진 부품 생산이 주력이 아니어서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장윤재 대구경북기계조합 본부장은 “이미 3년 전부터 이런 위기가 시작됐고, 이제는 그 위기가 곪아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업체의 상황이 정리가 안 되다 보니 하도급업체는 사업을 계속 영위해야 할지, 다른 업종으로 변경을 할지, 아니면 폐업을 할지 판단을 못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대구지역에서 조선 관련 업체는 전체 산업의 5%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와 상공회의소는 “조선 관련 업체들은 규모·매출 면에서 타 분야에 비해 작기 때문에 제대로 된 현황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 부품과 섬유를 주력으로 하는 대구 산업 구조 탓에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진 않겠지만, 철강 등 원자재 취급 업체는 물론 지역 상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선분야에 대한 조속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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