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의성 빙계계곡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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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0   |  발행일 2016-05-20 제37면   |  수정 2016-05-20
463년前 대지진의 그날…무너져내린 氷山은 계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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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하류 크고 작은 암괴들 사이로 계류가 흐른다. 왼쪽 도로변에 몇 군데 풍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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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계곡 제1경인 빙혈. 삼복더위에 얼음이 어는 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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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27호 빙산사지 5층 석탑. 고려초 모전석탑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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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서원. 모재 김안국, 회재 이언적, 서애 류성룡 등 6현을 봉향하고 있다.

삼복 때도 찬바람과 얼음 어는 계곡
엄동설한엔 따스한 바람과 김 모락
상류의 야영·캠핑장 일년 내내 인기

“풍혈이 얼마나 깊은지 저승까지 닿아”
춘원 소설 ‘원효대사’서 신비 묘사도
빙산사지 5층석탑·빙계서원 볼거리

방랑시인 김삿갓은 의성 빙계계곡을 일러 ‘굽이치는 냇가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바위틈에는 꽃이 피어 드리워졌구나’라고 했다.

지금 굽이치는 냇가에는 아이들이 낚싯대를 드리웠고,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는 꽃처럼 연한 이파리를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시인은 알았을까, 더운 날엔 찬바람 불고 추운 날엔 따스한 바람 부는 이 계곡의 정체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며 자연이 조화를 부리는 이 판타스틱 밸리를.

◆경북팔승지일, 빙계계곡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이 둘러서 있고 크고 작은 암괴들과 맑은 계류가 비경을 만드는 빙계계곡. 이 계곡은 삼복 때면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묘한 조화를 부린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산은 빙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는 빙계, 동네는 빙계리라 한다. 빙계의 원래 이름은 쌍계천(雙溪川)이다. 의성의 춘산면에서 발원해 비안면 쌍계리 부근에서 위천과 합류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하천이다. 그 상류부의 절경지대를 특별히 빙계라 부른다.

계곡 가운데 유난히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라 전해진다. 그 옆의 바위에는 ‘경북팔승지일’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올라서 있다. 무서움 없이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이다. 계곡 위쪽 제법 넓은 야영장과 캠핑장은 매 계절, 계절 잊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계곡은 중생대 화산 활동에 의해 생겨났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인류가 출현했고, 그리고 판타지와 무협이 실제했던 시절에 부처님과 용이 이 계곡에서 한판 대결을 했다 전한다. 무시무시한 쇠스랑이 용을 향해 날아가다 푹 찍혀 움푹 파인 곳을 사람들은 불정(佛頂)이라 했고,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용의 머리가 부딪쳐 푹 파인 깊은 웅덩이를 용추(龍湫)라 했다. 부처님의 승리였겠다.

조선이 건국되고, 명종 8년인 1553년에는 큰 지진이 났다 한다. 그때 남쪽 산과 이어져 있던 빙산의 일부가 붕괴해 하천이 생겨났다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천원출 빙산’이라는 기록이 있다.

지진은 계곡의 풍경에 역동적인 비경을 더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 자연과 전설과 역사가 빚어놓은 특별한 여덟 곳에는 따로 이름을 붙였다. 용추(龍湫), 물레방아(水礁), 바람구멍(風穴), 어진바위(仁巖), 의각(義閣), 석탑(石塔), 얼음구멍(氷穴), 불정(佛頂). 계곡 초입에 있는 용추는 지금 거의 메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물레방아는 옛날 주민들이 계곡물을 이용해 방아를 찧던 것을 재현해 두었다.

◆빙혈과 5층 석탑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에 보면,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에 이르렀을 때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고 한다. 공주가 동네 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으니, 사람들은 “빙산사 빙혈 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 준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 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마을 안, 미로 같은 돌담길을 지나 뒤쪽 언덕에 오르면 빙혈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네다섯 명이 함께 있을 정도의 작은 방 안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돈다. 부적과 같은 난해한 그림과 ‘선한 자는 흥하고 악한 자는 망한다’와 같은 문구 등이 빼곡하다. 허리를 굽혀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 속으로 내부가 슬깃 보이는데, 저승까지 닿아 있을까 멈칫한다. 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가자 점점 추워지고 전신은 꽁꽁 어는 듯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굴이 넓어졌고,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어둠 속에서 크게 소리쳤다. ‘아바아(여보)!’ 그 소리가 웅하고 울리다 큰 쇠북의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고 한다. 등골이 오스스해진다.

빙혈에서 나와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풍혈이 있다. 빙혈보다 좁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 이곳이 잠실로 이용되었음을 추정케 하는 기록이 있다. 풍혈은 1908년 발견되어 잠종(누에씨)의 저장장소로 연구했었다 한다. 미수 허목은 “이곳을 찾은 선남선녀들이여, 여기에 만고의 신비를 간직한 제일의 풍혈이 있다”고 했는데, 선남선녀와 풍혈은 무슨 관계일까.

빙혈 앞에는 자그마한 대지가 안온하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빙산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태종 때 폐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춧돌 몇 개와 모전석탑 형식의 5층탑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며 1973년의 해체 복원 때 지붕돌 속에서 금동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금불상은 임란 때 왜군들이 훔쳐갔다고 한다. 그 대좌는 빙혈 입구에 보존되어 있다.

석탑 앞에는 큰 나무가 갈라놓은 큰 바위가 있는데, 정오가 되면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을 드리워 인암이라 부른다. 바위의 모습이 어진 품성 그대로다.

◆빙계서원(氷溪書院) 앞에서

빙혈과 절터를 품은 마을은 서원(書院)마을이라 한다. 서원은 빙계계곡의 입구, 용추 근처에 크게 자리한다. 서원은 명종 11년에 창건되어 모재 김안국(金安國)을 봉향했는데, 당시에는 남대천 상류 장천에 세워 장천서원이라 했다 한다. 선조 때 사액을 받고 이곳 빙계리로 이건해, 회재 이언적을 합향하여 빙계서원으로 개칭했다. 후에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여헌 장현광을 추향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것을 2006년에 재건하고 학동 이광준을 추향해 6현을 봉향하고 있다.

서원의 문은 잠겨 있다. 배향되어 있는 이름들만큼이나 꼿꼿하고 큰 모양새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 낭랑하게 들린다. 서원 앞 하천에는 한 부부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무얼 찾으시나 가만 내려다보니 다슬기다. 커다란 망이 불룩하다. 빙계계곡에는 다슬기가 산다. 그러고 보니 10여 년 전 여름 이곳에서 다슬기 잡던 기억이 난다. 그 까맣고 윤나는 것이 지천이었고, 하늘에는 별이 그보다도 더 많았던 옛날이.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려 927번 도로를 타고 의성 금성면 방향으로 간다. 금성면 탑리에서 68번 도로로 가음면으로 간 뒤 현리리에서 계곡으로 들어가면 된다. 빙계계곡 입장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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