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9> 주왕산국립공원 주방계곡 지구 ‘주방천 페퍼라이트’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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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4   |  발행일 2016-06-14 제13면   |  수정 2021-06-17 17:31
바위에 불꽃처럼 박힌 알갱이들…꽃그림자인가 주왕의 핏자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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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천 페퍼라이트는 주왕산 대전사 입구에서부터 등산로를 따라 나타나는 ‘대전사 현무암층’에서 쉽게 관찰된다.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관광객들의 길벗이 되어주는 지질명소다. 페퍼라이트는 완전히 굳기 전의 수분 함량이 많은 퇴적암과 땅속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만나 뒤섞여 생겨난 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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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주방천 페퍼라이트 분포 지역. 초록빛 숲에 가려진 등산로와 풍성한 빛을 품은 주방천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길과 천(川)이 나란하다. 거의 기울기를 느낄 수 없는 주왕산의 초입, 주왕산의 심장에서부터 흘러내려온 주방천(周房川)이 낙낙한 품으로 흘러간다. 대전사 입구를 지나면 천(川)의 품은 점점 좁아진다. 길은 상쾌한 그늘에 싸여 ‘이제 산에 들었구나’라는 느낌이 단번에 드는데, 경사는 완만하고 산길은 부드럽게 사각거린다. 그러는 동안 계류는 풍성한 빛을 안고 착하고 순한 사람처럼 바위들을 어르며 상냥하게 흘러간다. 천변에는 수달래 관목들이 무성하다. 주왕이 흘린 피가 꽃으로 피어났다고 했던가. 꽃 지고 초록이 우거진 계곡이건만 얼핏 수달래 꽃 그림자를 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오래된 핏자국이었나.

 

#1.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의 흔적

주왕산은 약 7천만 년 전 용암과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산이다. 산을 피라미드로 그려보면 맨 아래에는 현무암, 그 위에는 응회암, 그 위에는 안산암과 퇴적암, 그리고 다시 응회암이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 화산 폭발은 아홉 번 이상. 그 중 처음으로 터져 나온 용암이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자리한 현무암이다. 이는 대전사 부근에 소규모로 나타나 ‘대전사 현무암’이라 부르는데, 대전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한동안 길벗이 되어주는 딴딴한 암벽이 그것이다. 

 

 

일명 ‘후추암’ 페퍼라이트
1억년전 지각 융기로 분출된 용암
완전히 굳기 전의 퇴적암과 부딪쳐
불꽃처럼 깨지고 퍼즐처럼 하나 돼

 

다양한 모습의 페퍼라이트
표면 거칠고 요철이 많은 ‘아아용암’
퇴적층 뚫고 나온 상중하 위치 따라
유동·아각·구상형 3가지 형태 보여 

 


현무암층 아래에는 두꺼운 퇴적암층이 깔려 있다. 주왕산이 존재하지 않았던 1억 년 전에 지각의 융기로 호수가 생겨났고 이후 모래와 진흙 등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용암은 이 퇴적암이 완전히 굳기 전에, 아직 차갑고 촉촉하고 말랑말랑할 때 터져 나와 흘렀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부딪치자 둘은 폭발적으로 뒤섞여 불꽃처럼 깨지고 퍼즐처럼 서로를 채워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암석이 ‘페퍼라이트’다. 길고 긴 시간을 다루는 지질학에서 페퍼라이트의 생성은 한순간의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왕산의 페퍼라이트는 대전사부터 자하교(제1폭포)까지 등산로를 따라 관찰된다. 페퍼라이트가 관찰되는 등산로를 이웃해 주방천이 흘러 ‘주방천 페퍼라이트’라고 한다. 주왕산의 주방천 페퍼라이트는 현무암질의 용암과 셰일이 혼합되어 있는 암석으로, 현무암 내에 적색의 셰일이 작은 입자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쉽다. 설핏 보면 붉은 꽃 그림자 같고, 문득 떠올리면 주왕이 흘린 피같고, 거울 보듯 하면 볼에 핀 기미 같은데, 누군가에게 그것은 ‘땅 위에 후추를 뿌려 놓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페퍼라이트, 일명 ‘후추암’이라 불린다. 페퍼라이트는 대전사 현무암층에서 쉽게 볼 수 있다.

#2. 대전사 현무암과 페퍼라이트

분출된 용암은 현무암질 용암류의 일종인 ‘아아용암’으로 분류된다. ‘아아’는 거칠고 들쑥날쑥한 요철이 많은 가시모양의 표면을 가리키는 하와이 원주민의 언어라 한다. 아아용암은 비교적 점성이 높아 멀리 흐르지 못하고 표면이 거친 용암지대를 만든다. 대전사 현무암층이 소규모로 분포하는 것은 아아용암의 성질 때문일 것이다.

용암은 여러 번 분출했다. 반복된 분출로 축적된 대전사 현무암층은 최고 약 60m 두께를 가지는데, 7m에서 10m의 현무암층 내에서 페퍼라이트가 협재되어 나타난다. 학계에서는 12매의 용암과 9매의 페퍼라이트가 교호하면서 대전사 현무암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각 용암층과 페퍼라이트 층의 두께는 다양하고, 실제 눈으로 확인되는 현무암은 매우 치밀한 모습이다. 페퍼라이트를 구성하는 현무암은 깨진 부스러기(쇄설)의 형태로 나타나고, 셰일은 현무암 쇄설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불규칙한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형태는 둥근형, 유동형, 모서리가 둥근 각형(아각형), 또는 불규칙한 괴상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주왕산의 페퍼라이트에서는 세 가지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3. 세가지 형태의 페퍼라이트

맨 처음 분출된 용암은 두껍고 촉촉한 퇴적층을 뚫고 나왔다. 용암의 엄청난 열기에 퇴적물 속의 수분이 기화되면서 셰일과 현무암 사이에 증기막이 쳐졌다. 증기막이 온도차를 상쇄시키고 둘 사이의 직접적인 반응을 막자 셰일은 부드럽게 유동하며 둥글어졌다. 이것이 하부에 형성된 구상 페퍼라이트다.

중부에는 셰일과 현무암의 경계가 대체로 둥그나 각을 가지고 있는 아각형의 페퍼라이트가 나타난다. 구멍이 많은 붉은 현무암편과 치밀한 현무암편이 뒤섞여 있고 이들 사이를 소량의 셰일이 메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처음의 분출 이후 부유했던 퇴적물이 다시 내려앉아 소량의 퇴적층을 형성했고, 그것이 굳기 전에 다시 현무암질의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상부에는 유동형의 페퍼라이트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용암에 사로잡힌 셰일이 용암을 타고 흐르면서 생겨난 것이다. 결국 퇴적물의 공급량, 그에 따른 수분량이 페퍼라이트의 형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쓱 만져본다. 야무진 고집쟁이처럼 단단하고 견고하다. 부드럽지 않다. 그러나 음지에서는 시원하고 양지에서는 따스하며 현무암과 셰일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연분처럼 서로를 꽉 붙잡고 있다. 뜨겁고 뾰족하고 들쑥날쑥한 아아용암은 차갑고 부드러운 셰일과 만나면서 꽤 원만해진 것같다. 주방천 페퍼라이트는 대전사 현무암층이 겪은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 기획: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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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에 의해 절벽에서 떨어져나온 암석이 사면에 쌓여 만든 애추(talus)지형.

 

주방천 수달래제>>> 5월 계곡 붉게 물들이는 꽃…개울에 띄워 주왕의 넋 위로

해마다 5월이면 주방천 계곡 주변으로 수달래가 무리지어 피어난다. 진달래보다 더 짙고, 하나의 꽃잎에 스무 개의 반점을 가진 선득하고 처절한 붉은 꽃. 이는 진(晉)나라의 후예 주왕(周王)이 이곳에서 흘린 피라는 전설이 있다. 진나라의 재건을 위해 반역을 일으키다 실패한 그는 주왕산 주왕굴에 숨어 지내다 신라 장군의 화살에 최후를 맞았다. 그가 흘린 피가 주방천을 붉게 물들였고, 그 이듬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꽃이 물가에 흐드러졌다. 그것이 수달래였고 사람들은 그를 주왕의 넋이라 믿었다. 수달래 꽃이 필 때면 주방천 계곡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사람들은 수달래의 꽃잎을 개울물에 띄워보내며 주왕의 넋을 위로하고,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기원한다.


주왕굴과 무장굴>>> 주왕 은거하다 최후…병장기 보관하던 곳

주왕산 등산길을 따라 오르다 자하교를 건너면 주왕굴 가는 길이 있다. 300m쯤 가면 먼저 주왕암(周王庵)에 닿고 그 오른쪽 골짝으로 접어들면 햇살 한줌 들지 않는 협곡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협곡을 오르는 철 계단 끝에 주왕이 숨어 지냈다는 주왕굴이 자리한다. 굴 입구 한쪽으로 물줄기가 흐르는데, 큰 비가 내리면 폭포로 돌변하고 한겨울에는 얼음벽이 된다고 한다. 주왕은 이곳에서 잠깐 고개를 내미는 사이 신라의 마장군에게 들켜 화살을 맞았다. 주왕암 조금 못 미쳐 우측으로 난 희미한 샛길을 오르면 주왕의 군대가 병장기를 보관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무장굴(武藏窟)이 나온다. 무장굴에서 바라보이는 주왕산 기암단애의 모습은 대전사에서 보는 기암의 묵중한 존재감에 비견될 만하다.


☞ 여행정보
주방천 페퍼라이트는 대전사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주방천을 따라 약 800m까지 분포하는 대전사 현무암층에서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대전사까지 600m 정도의 주방천변에서 주왕산의 기반암인 퇴적암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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