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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풍에서 숙성된 푹신한 명태는 가공과정을 거쳐 폭신폭신한 황태로 다시 태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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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은척면 장암리 작약산 중턱 해발 450m의 황태덕장. <영남일보 DB> |
진부령·미시령 경계 용대리 김경선씨
30년 前 스키타러 갔다 풍광 반해 정착
전문식당 운영 ‘대구 출신 황태 아줌마’
가게 옆 덕장 마련 매년 10만마리 건조
2000년 기점으로 사라진 동해안 명태
전국 200여 덕장 러·日 원양태로 충당
자연산 암컷 1마리로 회생사업 진행
작년말 고성 앞바다 1만5천마리 방류
이 겨울, 전국에서 가장 괴상한 바람이 부는 골짜기가 강원도 인제군에 있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지점, 용대3리 용바위와 매바위 사이다. 특히 매바위 옆 인공폭포 언저리에 자리 잡은 황태 전문식당인 ‘바람도리’는 골바람의 중심부다. 실제로 서 보니 바람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 식당은 2007년 황태삼합과 황태강정을 만들어 유명해졌다. 1986년 강원도권 첫 스키장인 진부령알프스스키장에 놀러왔다가 내설악의 풍광에 반해 정착해 훗날 황태 식당주가 된 김경선 사장. 3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황태 아줌마’로 변신했다. 매년 겨울이면 가게 옆에 있는 덕장에 10만 마리의 명태를 건다.
골 안으로 들어온 바람은 두 바위를 여러번 휘감다가 다시 들어온 골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골을 ‘바람돌이 골짜기’로 부른다. 대구 출신인 그녀는 초창기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 남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뀌는 변화 난측한 골바람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풍향이 워낙 극성스러워 상호 글자 중 도리의 ‘ㄷ’ 자를 거꾸로 디자인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바람이 너무 불어 간판 글씨가 뒤집어져 버렸다’고 설명해준다.
“1년에 두 번 풍향이 크게 바뀝니다. 4월과 11월이죠. 하절기에는 남풍, 동절기에는 북서풍이죠. 동절기에 남풍이 불면 그해 황태 농사는 끝장나버립니다. 한밤이면 그 바위와 주변 나무에 바람에 부딪히고 그럼 계곡은 괴성을 마구 질러댑니다. 그 바람으로 명태를 말려야 제대로 된 황태가 됩니다. 예전에는 그 소리가 그렇게 싫더니 이제는 우리 식구 밥 먹게 해주는 고마운 바람이네요.”
금강산 1만2천봉 중 휴전선 이남에 있는 3개의 봉우리가 있다. 향로·마산·신선봉이다. 마산봉에 있었던 진부령스키장은 영동고속도로변에 생겨 이동이 쉬운 용평스키장에 패권을 뺏기고 말았다. 설악산도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나뉜다. 진부령~미시령~한계령~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그 동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다. 덕장은 반드시 내설악에 설치해야 된다.
현재 용대3리에만 20여 군데의 황태 전문점이 있다. 설악로 용대1리~용대3리 주변에는 50여 군데가 포진해 있다. 최근 백종원씨가 황태구이의 원조집인 ‘용바위식당’을 방문했다. 소문이 나 거기로만 사람이 몰린다. 그게 마을 인심을 더 황량하게 만든다. 황태국은 용바위보다 근처 ‘용대진부령식당’이 더 나아 보였다. 황태의 산증인 격인 김승호 사장을 찾았다. 그는 용대리 덕장과 함께 살아왔다. 인제천 계곡물에서 직접 명태 내장을 빼서 세척한 뒤 덕장에 걸던 그 시절을 누구보다 똑똑히 기억한다. 아무런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황태국. 그 국물이 곰탕 육수 같다. 도시에서 온 관광객은 황태 요리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없기에 이 뽀얀 국물의 진가를 알 리 없다. 장난친 황태 육수인 줄 착각한다. 대구에서 평소 먹던 해장국용 북엇국과는 질감이 확 다르다. 농밀하면서도 폭신폭신하고, 그러면서도 졸깃한 황태의 살점은 본바닥에 와야만 실감하게 된다.
대구의 경우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황태국을 파는 데가 있다. 법원 바로 지척에 있는 지역 첫 황태 전문점 ‘황태성’이다. 이 식당은 용대3리에서 황태를 직접 가공하는 ‘황태고향’(대표 함성호)으로부터 황태를 받아 사용한다.
◆되살아나고 있는 국내산 명태
그 많던 명태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동해안 명태는 2000년을 기점으로 씨알이 말라버린다. 그런데 올해 희소식이 전해졌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해안로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동해수산연구소에서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 명태는 30년 전까지 동해에서 연간 7만t 넘게 잡혔다. 하지만 명태는 바닥나고 말았다. 급기야 러시아나 일본에서 잡아오는 등 원양태가 연간 24만8천t에 달했다. 정부가 명태 회생을 위해 거금의 현상금까지 내밀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연산 명태 암컷 1마리를 구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온 수정란 53만개를 확보해 1세대 인공종자 생산에 성공했다. 작년 12월에는 길이 20㎝까지 키운 1만5천 마리를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 방류했다. 고성은 한국 명태 1번지기 때문이다.
예전 함경도 명천지방에 사는 태씨 성의 어부가 처음 잡아 명태가 됐단다. 젓갈도 내장으로 만들면 ‘창난젓’, 알은 ‘명란젓’. 서해도, 남해도 아니다. 반드시 강원도 동해안권, 그것도 설악산과 오대산권의 기후조건이어야만 황태가 가능하다. 영하 10℃를 기준으로 추웠다 풀렸다를 3개월 정도를 반복해야 되는 제약 조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황태 덕장은 절대 막바로 들이치는 설한풍에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외설악은 꽝이다. 바람이 강했다가 약했다를 반복해야 되고 삼한사온까지 유지되어야 된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 못하고 그냥 마르기만 하면 북어가 된다. 황태와 북어는 가격차가 크다. 황태가 50% 더 비싸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인 60년대만 해도 인제 내린천 주변 계곡, 현재 용대리 산촌이 황태 덕장으로 더없이 좋았다. 지척의 동해안에서 잡힌 명태를 갖고 와 덕장에 널기 전 내장을 제거하고 계곡물을 이용해 세척도 했다. 이젠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지금은 속초, 강릉, 정동진 등에 있는 수산물가공공장에서 냉동 명태를 갈무리한 걸 갖고 와 덕장에 건다.
1주일 정도 건조하면 코다리, 한달 정도 말리면 북어, 세달 정도 말려야 비로소 황태가 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얼어버리면 ‘백태’, 너무 말라 딱딱해져버리면 ‘흑태·먹태’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건 ‘낙태’가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 생선포류는 FD(Foison Drying)방식, 즉 기계로 동결건조한 것이다.
현재 전국에는 황태를 생산하는 덕장이 200곳 이상이다. 심지어 경기도 가평에 이어 최근에는 예천 소백산 자락에서도 덕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롯데마트는 상주에 전용 덕장을 마련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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