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김민정 나쁜 페미니스트 대표

  • 이은경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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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3   |  발행일 2016-12-23 제34면   |  수정 2016-12-23
모두의 생명·삶터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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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대구 중앙로 역에 빼곡히 붙은 추모 포스트잇. <김민정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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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대구 지하철역도 포스트잇 추모 물결

“친구들과 중앙로역 행사로 생각 공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단 자각 일어
여성주의 가치관 나누는 연대로 발전”
달빛걷기·낙태죄 폐지 시위 등 활동

지난 5월17일 새벽 1시경, 강남역 인근 한 건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흉기를 소지하고 화장실 안에 숨어 있던 김모씨는 화장실에 들어왔던 남성 여섯 명을 그냥 보낸 다음 일곱 번째이자 첫 번째 여성이었던 피해자를 찌른 뒤 도망쳤다. 그는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여성은, 여성이라서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 일상의 무수한 폭력을 겪으면서 ‘아직’ 목숨을 잃지 않고 있을 뿐인 여성들에게 그래서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와 SNS에서 개인들이 시작한 추모의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되었고 서울은 물론 각 지역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다. 여성주의 그룹 ‘나쁜 페미니스트’도 이때 결성됐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키워오던 이들은 강남역 사건이 일어나자 대구 중앙로역 2번 출구에서 모였다.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추모를 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추모와 자유발언의 시간을 가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털어놓은 여성들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들입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예민녀’가 되었지만 이제 그것조차 소용없음을 느낀다” “내가 살해당했다면 네가 이 자리, 이곳에 와 주었겠지” “다음에는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요. 태어나도 대한민국의 여자로는 태어나지 말아요” 포스트잇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들이었다.

김민정 여성주의 그룹 나쁜 페미니스트 대표는 “2015년부터 함께 공부해 온 10여 명의 친구와 같이 중앙로역에서 행사를 가졌다. 정신병자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치부됐지만, 여성혐오는 실제적인 위험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매일 저녁 중앙로역에서 포스트잇에 추모글을 써붙이고 자유발언을 통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했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강남역 살인사건의 추모에서 한발 더 나아가 6월 첫 주말, 달빛걷기 행사를 가졌다. ‘우리의 밤길을 되찾겠다’는 취지였다. 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밤에도 안전하게 떳떳하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동성로 달빛걷기 행사에 이어 문화제도 열었다. 대전, 울산, 부산, 광주 등의 여성주의 모임들이 함께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는 주제로 자유발언과 퍼포먼스, 인디밴드 공연 등을 펼쳤다.

김 대표는 ‘수다회’라는 이름의 여성주의 관점의 토론회로 강남역 살인사건의 과제를 이어가고 있다. 금지되었던 이야기, 생리, 섹스, 속옷 등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 쉬쉬하거나 잘 모르거나 무심했던 것들, 차별인지 폭력인지도 모르고 그냥 힘들게 참아만 왔던 것들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이를 재의미화하고 자각하는 자리다.

이 밖에도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나의 자궁 나의 것’, 연대와 네트워킹을 위한 ‘페미니즘 이어달리기’, 여성영화제 ‘이야기가 있는 달빛극장’, 대중강연 ‘여성의 눈으로 다시 읽기’ 등 다양한 여성주의 행사를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공공연히 ‘아줌마’ ‘미스 박’ 등의 여성비하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욕하면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욕설로 박 대통령의 어떤 잘못들이 부각되는가. 어떤 잘못된 정치 행위들이 이야기되는가. 그가 대통령이 돼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잘못된 것들을 행해 온 그 시간과 그 행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말할 것이 많지 않나. 2017년에는 아직 살아 있는 여성들, 그리고 여성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믿는 남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저항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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