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지역 사드배치] 김수상 시인

  • 이은경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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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3   |  발행일 2016-12-23 제34면   |  수정 2016-12-23
불의·부정에 굴하지 않는 ‘올바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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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사드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수상 시인이 사드배치 결사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수상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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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모 봉양 위해 작년 귀향 첫 농사
집서 2㎞ 거리에 사드배치 소식 날벼락

“사드가 詩나 쓰던 나를 싸움꾼 만들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집회서 자유발언
모두 6차례 시 낭송…문단의 주목까지”
평화도보순례 등 공동체 되살리는 행보


“옛사람 가야인의 무덤이 별처럼 돋아있는 별의 산 성산(星山)에

미사일이 온다고 통보하는 날,

참외밭 찜통하우스에서 참외를 따던 우리는

새까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천년의 바람이 아직도 놀고 있는 성밖숲의 왕버들은 분해서 잎을 떨었고

가야산의 여신도 고개를 돌렸다.

레이더가 오고 미사일이 오면

철조망이 쳐지고 전자파가 읍내를 뒤덮는다는데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엔

전자파가 수영장의 물처럼 흥건히 고여 있을 텐데

어쩌나, 정말 그러면 어쩌나

벌들도 떠난 들판엔 참외 꽃만 혼자서 시들어갈 텐데

성산의 고분 위의 별들도 더 이상 돋아나지 않을 것인데

너희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함부로 대했다.

우리의 노동을 거칠게 대했다.

우리의 정갈한 밥상을 발로 차 엎었다.

밥상을 엎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죽는 어이없는 죽음을 수없이 보았다.

이 땅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김수상 ‘너희는 레이더 앞에서 참외나 깎아라, 우리는 싸울테니’)



김수상 시인. 창백한 흰 얼굴에 어눌한 말투, 샌님 같은 그가 투사가 다 됐다. 7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아흔 넘은 어머니가 계신 성주 성산리에 집을 짓고 노년을 보내겠다는 그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다.

김 시인은 지난해 성주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교육을 받았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대추나무가 제격이라는 말을 듣고 왕대추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물론 첫 농사는 엉망이었다. 잡초가 나무보다 더 자랐다. 그렇게 귀향의 꿈을 키우며 주소 이전을 마치고 중2인 막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던 지난 7월12일. 그의 집터에서 2㎞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발표가 났다. 다음날 그는 성주로 뛰어갔다.

“원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라서 많은 사람 앞에선 말도 못하는 사람인데 분노를 참지 못하겠더라. 집회에 참여해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말재주도 없고 해서 내가 쓴 시를 낭송했다. ‘너희는 레이더 앞에서 참외나 깎아라, 우리는 싸울테니’였다. 사드의 레이더는 안전하니 참외를 깎아먹고 사진을 찍겠다는 국회의원의 말을 듣고 쓴 시였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문단의 주목까지 과분하게 받았다. 사드가 서정시나 쓰던 시인을 싸움꾼으로 만들었다.”

인생이 살기 어려울수록 시는 쉽게 쓰이는 법. 윤동주의 시처럼 부끄러워 할 일만은 아니다. 김 시인은 첫 시 낭송에 이어 지난달 27일 138차 집회까지 모두 6번째 시를 낭송했다. 성주군민 단체 삭발을 보면서 ‘똑똑히 보아라, 우리가 바로 평화다’를 발표했고, ‘술집 다방하는 것들’이라는 성주군수의 막말에 맞서 ‘저 아가리에 평화를’이란 시를 썼다. 평화나비 도보 순례에 참여한 뒤에는 ‘니들이 이 맛을 아느냐’를 발표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시를 읽으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눈물을 훔쳤다. 유명해지면서 성주 군민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모임도 만들어졌다. 답답한 속마음을 글로 후련하게 표현해보고 싶다는 할머니들이 한 달에 두 번 김 시인과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회에 참여했다”는 그는 “새누리당에 78% 표를 몰아준 동네의 변화는 엄청났다”고 말했다.

“달마산 아래 흘러가는 물을 그대로 퍼 마시던 아름다운 동네, 그 삶터를 지키겠다며 소박하게 시작한 집회를 통해 많은 것이 변화했다. 집회를 통해 공동체 정신이 부활하고 토론과 교육도 이뤄졌다. 집회 30분 전에 나와서 떡과 생수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일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 이도 있다. 춥지 말라고 장작만 열심히 패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연대의 정신을 키우고 있다. 세월호나 밀양송전탑처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사드가 가져다 준 일종의 역설적 축복이다.”

오늘(23일)로 성주사드반대 촛불집회는 164일째를 맞는다. 군청 앞마당 ‘평화나비광장’에서 시작된 집회는 한여름 뙤약볕과 한겨울 칼바람에도 흔들림없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오후 7시30분이면 할매들은 하루같이 목욕탕 의자를 들고 나와 집회에 참석한다. 광장에는 ‘평화난로’가 등장해 군고구마를 구워내고, 누군가는 말없이 어묵을 끓여 추위를 녹여주고 있다. 11월27일엔 초전리에서 소성리까지 8㎞를 걸으며 ‘평화나비 도보 순례’도 했다. 때마침 첫눈이 축복처럼 내렸다.

“성주 사드 반대는 이제 한반도 사드 반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김 시인은 “이미 도로 건설 공고가 났고 이르면 내년 8월 설치될 전망이라는 보도도 있다. 우리는 길을 막고 투쟁할 예정이다. 소성리 할매들이 그러시더라. ‘이 만데이 저 만데이에 있는 양짝 질만 막으면 사드는 못 간데이. 그래도 갈라 카만 고마 여 있는 할매들 다 질 가에 들누불 끼다.’”

김 시인은 “2017년은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라 했다. “다가오는 설(1월28일)은 성주 사드반대 촛불집회가 꼭 200일이 되는 날이다. 박근혜 정권의 미래와 연동해 국회에서 폐기되는 방안도 기대하고 있다. 힘을 보태고 그 힘들이 모이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몇 동 지어서 상추, 쑥갓, 파슬리를 키워 그날 그날 도시의 사람들에게 퀵서비스로 배송해 주는 사업을 하겠다는 김 시인의 소박한 꿈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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