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5개월 지나도 분양률 0%…빨간불 켜진 ‘포항블루밸리産團’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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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7 07:28  |  수정 2017-02-27 09:10  |  발행일 2017-02-27 제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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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철강신화’를 꿈꾸며 조성 중인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산업시설용지 37만㎡(19필지)를 분양한 결과, 현재까지 분양률 0%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철강경기 위축 등 세계적 경기침체로 기업의 투자 여력이 떨어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타이타늄의 전초기지로 육성할 계획인 블루밸리산단의 경우 ‘규제 프리존(Free Zone)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기업의 투자 의지마저 꺾고 있다는 지적이다. 블루밸리산단의 추진 과정과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쉽지 않았던 조성 과정

국가산업단지는 국가기간산업 및 첨단과학기술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한 곳이다. 정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조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싸고 교통 인프라가 개선되며 R&D(연구·개발) 시설을 비롯한 각종 기관 유치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경북에는 그동안 포항철강산단, 구미국가산단, 경주월성원자력단지 등 세 곳뿐이었지만 2009년 9월 포항블루밸리가 국가산단으로 지정되면서 네 곳으로 늘어났다.


기계·선박·미래車·에너지 활용
타이타늄 신성장 전략기지 구상

기업 “공장 이전해도 혜택 없어”
규제 프리존법 지연…투자 위축

포스코 경영 악화·불경기 악재
4차산업 기업유치 특별법 시급



블루밸리산단은 LH가 시행을 맡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장기면·동해면 일원 611만9천㎡ 부지를 개발 중에 있다. 당초 2013년 12월 말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2010년 LH의 재정난으로 각종 개발사업이 재검토됨에 따라 표류했다. 다행히 ‘사업취소’의 칼날은 피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 반발로 토지 보상이 늦어지면서 또 한번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0월 1단계 사업(295만2천㎡)에 들어가 현재 54%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2018년 6월 완공 예정이다. 2단계는 2019년 12월 마무리된다.

◆산업용지 첫 분양 처참

2015년 10월 1단계 사업지 내 주택용지(공동주택, 단독주택)와 상업용지 등이 전량 분양되면서 산단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됐다. 포항 최대 산단으로 규모뿐만 아니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강점이 어필되면서 100% 계약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KTX역사와 영일만항까지는 30분 거리로 물류운송이 쉽고, 고속도로를 통해서는 30~40분 만에 울산까지 도착할 수 있다. 또 취득세 50%, 재산세 5년간 75% 감면 등 세제혜택도 한몫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산단 활성화에 대한 전망은 장밋빛이었다.

그러나 산업시설용지 첫 분양 접수 결과는 처참했다. LH는 지난해 9월 19필지 37만㎡(10만여 평)에 대해 분양 공고를 냈으나 단 한 필지도 팔지 못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LH는 지난 1월 포항사업단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분양 업무를 포항사무소에서 대구본부로 이관해 판매특별팀을 구성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분양 실패에 따른 분석을 통해 △분양 시 산업단지 필지 세분화(6천611㎡→3천305㎡) △유치 업종 다양화 △기업 수요 분석 필요 등 방안을 강구했다.

◆분양 저조 두 가지 원인

산업시설용지 분양의 실패 원인으로 첫째, 철강 일변도의 포항지역 산업 구조를 들 수 있다. 산단 분양 전문가에 따르면 한 지역 내에서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인근 기존 산단에 있던 기업이 신생 국가산단으로 이전하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수십 년 된 기존 공장을 팔고 개발 지역으로 옮겨가는 수요가 발생한다는 것. 하지만 포항의 경우 철강을 자르고 용접하는 단순 작업이 주를 이루는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신생 산단으로의 이전 같은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지역 경기를 주도했던 포스코가 중국의 철강 과잉생산과 문어발식 확장 등으로 경영 악화가 거듭되면서 포항지역 다른 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분양실패 둘째 원인으로는 블루밸리산단에 들어서게 될 관련 업종의 극심한 불경기가 꼽혔다. 김영란법, 최순실 국정농단, AI, 구제역 등 끝 모를 악재가 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됐고, 이 때문에 기계, 철강, 선박, 자동차, 에너지/IT 분야의 부품소재 업체가 투자 여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블루밸리가 조성되면 울산의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과 관련된 부품소재 생산 업체가 대거 유치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경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울산지역의 기업 유치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기업을 겨냥해 추진됐던 블루밸리산단이 시기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규제 프리존 특별법 시급

분양 저조는 산단이 조성되고 있는 전국 지자체의 공통된 고민이다. 문제는 기업유치 및 산단 활성화와 관련된 규제 프리존(Free Zone)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데 있다. 규제 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가 드론·친환경자동차·3D프린팅 등 전략산업을 선정하면 정부가 금융·세제·인력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융복합·신산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법이다.

경북은 스마트기기와 함께 타이타늄을 미래성장 산업으로 선정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타이타늄 관련 산업을 블루밸리산단에 집적화시켜 신성장 산업의 전략기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국내 타이타늄산업은 대외 의존도가 91%에 달할 정도로 국산화가 저조한 분야다. 타이타늄 소재는 철보다 43% 가볍지만 알루미늄합금보다 2배 강하다. 항공기 날개구조물을 비롯해 임플란트, 장갑차, 미래자동차 등 활용 분야가 다양하다. ‘포스트 철강’ 시대로 포항이 떠안고 있는 철강 일변도의 산업구조를 탈바꿈시키는 신성장산업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여야 공동으로 발의한 규제프리존법이 야권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프리존 특별법이 추진됐다. 이 법은 4차산업의 기업 유치에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며 “야당에서조차 이 법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불확실한 정치 상황을 고려해 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루밸리산단에 투자 의향을 보였던 기업도 특별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현재 가동하고 있는 공장을 팔고 포항으로 오기에는 아무런 득이 없기 때문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블루밸리산단은 타이타늄 관련 산업이 집적화되는 곳이다. 자동차·기계·에너지 분야의 부품소재 업체가 타이타늄 소재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전환이 쉬워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며 “하지만 아무런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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